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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9.26 20:22 수정 : 2014.09.28 13:36

[토요판] 황윤·김영준의 오! 야생

전기톱 소리가 원시림에 울려퍼진다. 끼이익~쿵. 아름드리나무들이 단 몇 초 만에 베여 넘어진다. 수백년을 살아낸 지혜롭고 위대한 할머니 할아버지 나무들이 처참히 쓰러진다. 가리왕산에서 대대적인 벌목이 열흘째 진행 중이다. 500년 원시림을 전기톱과 포클레인으로 밀어내는 이 공사는, 평창동계올림픽 알파인스키 경기 단 3일을 위한 것이다!

가리왕산은 조선시대부터 왕실이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관리한 숲으로, 남한 땅에 남은 마지막 원시림이다. 환경부 지정 녹지자연도 9등급. 숲의 천이 마지막 단계인 극상림을 뜻한다. 가리왕산은 세계 최대의 왕사스래나무 자생군락지이며, 남한 내 최대의 개벚지나무 자생군락지, 한국 유일의 주목 군락지이다. 흉고 지름이 무려 130㎝나 되는 국내 최고령 신갈나무도 여기에 있다. 국제자연보전연맹 멸종위기 생물목록(IUCN Red List)에 올라와 있는 산마늘, 땃두릅나무, 눈측백, 한계령풀, 나도옥잠화, 주목, 노랑무늬붓꽃, 금강애기나리, 도깨비부채, 금강제비꽃 등의 서식지다. 가리왕산은 2475㏊(헥타르)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보호림이다. 민간을 포함한 일체의 국책사업도 개발이 금지된 보호구역이었다. 그러나 산림청은 2013년 6월,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78㏊를 해제 고시했다.

환경영향평가가 개발사업의 면죄부 기능을 한 지는 오래됐다. 환경영향평가서는 동계올림픽 스키장 건설이 담비에게 미치는 영향을 이렇게 기술했다. “공사 중 발생하는 소음, 진동 등에 의한 영향이 예측되지만 물리적 교란을 우회하여 서식, 이동할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맞다. 벌목이 시작되면 담비는 다른 곳으로 옮겨 갈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른 곳’에도 다른 담비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영역을 확보하려는 다툼이 일어날 것이고, 벌목지에서 쫓겨난 담비는 다른 담비의 영역에서 쫓겨나거나, 아니면 다툼 끝에 죽게 될 것이다. 환경영향평가서는 수달에 대해서도 똑같이 썼다. “…분산, 회피, 이동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 벌목으로 쫓겨난 수달은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러나 이 수달이 살 만한 다른 곳에는 이미 또 다른 수달이 살고 있을 터이다. 벌목 공사를 하면서 담비, 수달, 삵, 하늘다람쥐를 직접 죽이지는 않겠지만, 스키장 건설은 그들을 간접적으로 죽일 것이다.

사람들은 동물들의 생태를 너무 우습게 생각한다. ‘다른 데 가서 살면 되지’라고 편하게 말한다. 이건 마치, 도시 재개발로 집을 잃은 사람들을 내쫓으면서 다른 데 가서 살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 그나마 사람들에게 주는 터무니없는 보상금조차 동물들에겐 없다. 멸종위기종으로 간신히 명맥을 이어오던 까막딱따구리 가족도 갈 곳 없는 피난민 신세가 될 것이다. 숲의 생태계는 아주 섬세하게 짜인 그물망과 같아서, 어느 한 곳이 찢어지면 다른 곳에도 영향이 미친다. 스키장 건설은 나무와 동물들뿐 아니라, 물고기, 곤충, 양서류, 파충류 등 가리왕산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곤충은 변온동물로서 온도, 습도 등 주변의 작은 환경변화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스키장 난방기구, 자동차 배기가스, 광원, 오염물질 등으로 인해 곤충의 종 다양성이 줄어들 것이고 이는 곤충을 먹이로 하는 새들의 생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새들의 죽음은 동물들의 죽음으로 이어질 것이고, 동물들의 감소는 식물 다양성의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중요한 건, 가리왕산을 죽이지 않고도 동계올림픽을 충분히 치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국제스키연맹 규정은 “개최국 지형여건상 표고차 800m를 충족하지 못할 때 표고차 350~400m에서 두 번에 걸친 완주기록으로 경기 가능”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표고차 750m인 기존의 스키장에 50m짜리 구조물만 세워 800m를 충족시키는 규정도 있다. 이런 방법들을 다 놔두고, 수천억 예산을 낭비하며 대규모 원시림을 파괴할 이유가 무엇인가? 독일, 스위스, 폴란드, 스웨덴 등 많은 선진국들은 대규모 자연파괴를 일으키는 동계올림픽 유치 신청을 주민투표 또는 의회의 결의로 거부했다. 가리왕산이 운다. 이번 주말, 가리왕산을 껴안으러 가자!

황윤 다큐영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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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황윤·김영준의 오! 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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