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0.10 19:05
수정 : 2014.10.11 16:25
[토요판] 황윤·김영준의 오! 야생
가을이 깊어갑니다. 동녘 하늘에 노랗게 떠오른 보름달은 왠지 기분을 가라앉게 만들곤 하죠. 가느다랗던 풀벌레들도 번식이 막바지에 다다른 듯 손가락 길이만큼 커지고 곳곳에 알을 밴 사마귀들도 잔뜩 눈에 띕니다. 야생동물들도 한층 바빠졌습니다. 이미 우리나라를 바지런히 찾아온 기러기들은 수확을 한 논 위에서 낙곡을 먹기 위해 무리지어 앉아 있고, 여름 철새인 제비나 백로들은 여기저기 무리지어 앉아 좋은 바람이 남쪽으로 불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많은 수의 벌매나 맹금류들은 서해의 흑산도나 가거도 등지를 통해 무리지어 빙빙 돌며 남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역시 멀리 움직일 때는 야생동물이나 사람이나 무리지어 함께 가는 게 좋겠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출장이 늘어 길에 나설 일이 많아진 요즘, 갑자기 부쩍 늘어난 길 위의 핏자국을 많이 보게 됩니다. 길죽음(로드킬)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대개 고라니나 너구리, 삵이 많습니다. 6월에 태어난 고라니는 성장이 매우 빠릅니다. 1㎏도 되지 않는 몸무게로 태어나 9월 말이 되면 거의 10㎏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하니 말이죠. 보통 다 큰 고라니의 몸무게가 15㎏ 안팎이니 곧 어미를 떠날 때가 된 셈입니다. 10월께부터 어미를 떠나는데 모든 게 생소합니다. 특히 수컷은 멀리 떠나는 경향이 있어 더 많은 길을 가야 합니다. 하지만 상황은 만만치 않습니다. 야생에서 호기심은 위기를 불러오기에 매우 위험한 습성일 수밖에 없습니다. 차에 치인 동물은 대개가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먼지처럼 걸레처럼 사라지는 동물들이 대다수입니다.
몇몇 운이 좋은 동물은 살아남아, 마음씨 좋은 사람에게 발견되어 구조센터로 이송되기도 합니다. 구조센터에 동물이 도착하면 또 넘어야 할 산이 있습니다. 구조센터에서는 동물을 살려 다시 돌려보내야 하므로 야생복귀 가능성이 치료의 최우선 표지판이 되곤 합니다. 시력검사, 청력검사, 골격이상검사, 신경검사 등이 진행됩니다. 낮에 다니는 동물은 색깔인식이 중요하니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시력이 필수적입니다. 특히 주행성 맹금류처럼 다른 동물을 추적하여 잡아먹어야 하는 동물은 거리를 측정하는데 양쪽 시력이 반드시 필요하니 한쪽 눈이라도 다치게 되면 야생으로 돌아가기는 그른 셈입니다. 반면 수리부엉이처럼 밤에 사냥을 하는 동물은 시각은 명암만을 구분하는 것이니 한쪽 시력을 잃더라도 생존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먹잇감의 위치 등을 판단하는 것은 소리에 의존하게 되므로 양쪽 청각이 방생에 필요조건이 되는 셈이죠. 한쪽 청력을 잃는 것만으로도 돌아갈 수 없습니다. 평생을 데리고 있거나 안락사를 시켜야 합니다. 고라니는 또 다릅니다. 운이 좋아 수술이 가능하게 골절이라도 되면 고맙습니다. 보통 고라니의 어깨높이는 대략 70~80㎝ 정도입니다. 이는 일반 차량의 범퍼 높이이기에 충돌을 하게 되면 척추가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척추가 손상당하니 앞다리로 일어서려고 버둥대지만 뒷다리가 말을 듣지 않습니다. 마취를 하고 방사선 촬영을 해보면 어김없이 척추가 부러져 있습니다. 말을 못하는 동물이지만 그 고통은 얼마나 심할까요?
말이 안락사지, 매번 교통사고를 당한 고라니를 죽여야만 하는 직원들의 마음은 괴롭습니다. 신고를 하고 간혹 손수 피 묻은 동물을 구조센터까지 이송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이동시간을 현장에서 기다리며, 자신이 차로 친 동물을 보호하고 지키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런 분들에게도 미안해지지만 동물의 고통을 생각하자면 누군가는 악역을 담당해야 합니다. 기껏 치료해서 돌려보낸 동물이라고 안전하지도 않습니다. 치료 후 방생한 고라니 8마리에게 추적장치를 달아보았더니 120일 안에 5마리가 도로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자료를 얻고서 참으로 허탈해지기도 합니다. 도로는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기반시설이지만 여전히 야생동물을 가장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인입니다. 우리와 같이 숨 쉬고 살아가야만 하는 야생동물과 어떻게 공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구조센터 직원들은 여전히 고민 중에 있습니다.
김영준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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