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0.24 19:24
수정 : 2014.10.26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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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코끼리 덤보. 사진 위키피디아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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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황윤·김영준의 ‘오! 야생’
아이가 즐겨 듣는 이야기 시디(CD)가 있다. 흥부 놀부, 미운 오리 새끼 등 세계 각국의 이야기들이다. 그중 <아기 코끼리 덤보> 이야기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올 때마다 나는 불편한 마음이 된다. 이야기는 이렇다. 서커스단에서 쇼를 하는 엄마 코끼리가 새끼를 낳는다. 유난히 큰 귀를 가진 새끼 코끼리 덤보는 종종 놀림을 받는데, 어느 날 덤보가 공연에서 실수로 넘어지고 만다. 그 때문에 또 놀림거리가 된 덤보. 비웃는 사람들에게 화가 난 엄마 코끼리가 거칠게 행동한다. 서커스단은 엄마 코끼리를 철창에 가둔다. 아기 코끼리 덤보는 자기 잘못으로 엄마가 그렇게 됐다며 자책한다. 울적한 덤보는 생쥐 친구의 제안으로 큰 귀를 이용해 나는 법을 연습한다. 그러다 마침내, 귀를 펄럭여 나는 데 성공한다. 덤보는 서커스에서 날아다니는 공연을 펼치며 인기를 얻는다. 덤보 덕분에 엄마 코끼리는 철창에서 풀려나고, 엄마 코끼리는 멋진 쇼를 하는 덤보를 자랑스러워한다.
물론 이 이야기를 꼭 직설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코끼리를 통해 인간 세상을 이야기한 ‘우화’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 이야기를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보통 아이들과는 다른 생김새 혹은 장애를 가진 아이와 그를 놀리는 사회의 편견. 그 편견을 딛고 일어서 자긍심을 되찾는 아이’ 이렇게 보면, 아름답고 교훈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야기가 현실을 반영하고 또 현실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야생동물을 이용한 서커스는 매우 잔인한 상업행위이다. 야생에 있어야 할 동물들을 가두고 인간 흉내를 내도록 훈련시켜 구경거리로 전락시키기 때문이다. 감금과 훈련 과정에서 많은 동물들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고, 죽기도 한다. 동화는 이런 현실을 생략하고 왜곡한다. 동화 속 코끼리들은 서커스에서 일하는 걸 즐기거나 자랑스러워한다. 수십년 전 디즈니 만화영화로 만들어진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수없이 많은 연극과 그림책으로 리메이크되고 있다. 설상가상, 디즈니사는 이 덤보 이야기를 실사 영화로 만들 계획이라 한다. 영화가 아이들에게 심어줄 서커스 판타지, 인간 중심 세계관이 걱정된다. 출연할 실제 코끼리들은 또 얼마나 고생을 할까.
어린이 도서관에서 무심코 집어든 <아프리카여 안녕!>이라는 그림책을 아이에게 읽어주다가 참으로 당혹스러웠다. 이 책은 아프리카에 사는 호기심 많은 원숭이, 조지가 주인공이다. 어느 날 노란 모자를 쓴 백인 “아저씨”가 조지를 보고, 이렇게 생각한다. “참 귀여운 꼬마 원숭이네. 집에 데려가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아저씨는 노란 모자로 조지를 유혹해서 자루에 넣은 다음, 배에 싣는다. “조지야, 내가 너를 대도시에 있는 커다란 동물원에 데려다 주겠다. 거긴 네 맘에 쏙 들 거다.” 도시에 도착한 조지. 호기심 탓에 이런저런 사건 사고를 계속 일으키는데 … (실제로는 야생동물이 인간의 도시에 적응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사고이겠지만, 책에서는 호기심 때문에 일어나는 왁자지껄 소동으로 처리된다) “아저씨”가 나타난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조지와 아저씨는 자동차를 타고서 동물원으로 갔대! 동물원은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지 몰라!” 낙타, 기린, 하마 등이 풍선을 갖고 노는 가운데, 원숭이 조지가 동물원 안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아프리카 밀림에 사는 원숭이가 “조지”라는 영어 이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소개되는 것부터가 비현실적인 이 책은, 야생동물 포획과 동물원 전시를 매우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저자 한스 아우구스토 레이는 1898년 독일 함부르크 태생이다. 19세기 말, 20세기 초반은 제국주의 열강이 아프리카, 아시아의 식민지를 침략해 온갖 야생동물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다가 자국의 도시 한복판에 가둬놓고 전시를 하던 때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동물원의 시작이다.
이 시기에 나온 그림책 중에는, 제국주의의 잔인한 탐욕을 동물원 낭만화로 포장한 책들이 상당히 많다. 원숭이 조지 이야기는 그중 하나일 뿐이다. 식민지의 입장이나, 영문도 모른 채 낯선 도시로 끌려간 야생동물들의 비애는 결코 그림책에서 이야기되지 않는다.
동물원에 많은 인파가 몰리는 계절이다. 동화책이 드리운 낭만의 커튼을 걷어내고 동물원을 직시하자. 그곳엔 자유를 박탈당한, 가족과 고향을 잃어버린, 슬픈 눈동자의 영혼들이 있다.(다음 칼럼에서는 동물원과 야생동물을 다른 관점에서 그린 그림책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황윤 다큐영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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