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5.01.02 19:03 수정 : 2015.01.02 19:03

[토요판] 황윤·김영준의 오! 야생

2001년 1월, 야생동물을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설악산으로 탐사를 갔다. 큰 눈이 내렸다. 숙소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우리는 설악녹색연합 박그림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을 통해 나는 산양을 처음 보았다. 소처럼 커다랗고 순한 눈동자와 단단한 두 개의 뿔, 잿빛 털을 가진 산양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산양 이야기를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이, 설악산은 눈으로 뒤덮였다. 허리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고 비탈길에서 미끄러지면서도 행복했다. 도시를 벗어나 야생 안에서, 몸과 영혼이 살아남을 느꼈다. 가까스로 오른 절벽 끝. 그곳에 산양의 흔적이 있었다. 마른 똥과 잿빛 털을 마치 보물인 듯, 우리는 조심조심 살펴보았다. 그렇게 나는 ‘야생’을 처음 만났다.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날의 차가운 바람과 눈, 산양의 흔적을 처음으로 마주했던 순간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산양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그 흔적을 본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사람들을 피해 이렇게 높고 험한 곳까지 몰려 살고 있다니.

산양은 남한 땅 통틀어 겨우 800마리 정도만이 남아 있는 멸종위기 1급 야생동물이다. 비무장 지대, 설악산, 오대산, 경북 울진, 삼척 등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 중 설악산에 남아 있는 산양이 200여마리. 위태롭기만 한 숫자이다. 밀렵과 서식지 파괴, 기후변화로 갈수록 심해지는 폭설과 한파까지 더해, 산양은 더는 물러설 곳 없는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이런 산양을 감싸안아 보호해도 모자랄 판에, 케이블카 건설계획으로 설악산이 흉흉하다. 강원도와 양양군은 오색에서 설악산 끝청봉까지 케이블카를 설치하려고 한다. 케이블카 노선이 예정된 3.4㎞ 안에는 자연보존지구 2.8㎞가 포함돼 있다. 자연보존지구란 “생물다양성이 특히 풍부한 곳, 자연생태계가 원시성을 지니고 있는 곳, 특별히 보호할 가치가 높은 야생 동식물이 살고 있는 곳 또는 경관이 특히 아름다운 곳으로서 특별히 보호할 필요가 있는 지역에 대하여 ‘자연공원법’에 따라 공원계획으로 결정·고시한 지구”를 말한다. 이뿐만 아니라 이 구간은 천연보호구역,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고 산양의 최대 서식지이며 삵, 하늘다람쥐, 담비 등 멸종위기 동물들이 살고 있는 땅. 한마디로 절대적으로 보존해야 할 곳에 케이블카를 놓겠다는 발상이다. 케이블카 건설이 추진되면 지주를 세우기 위해 벌목을 할 것이고, 건물과 인공시설이 들어설 것이다. 무엇보다 오색에서 끝청봉까지 8~10인승 곤돌라가 연간 60만명의 관광객을 실어 나르게 된다. 설악산은 이미 지금도 한해 300만명 이상의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휴식년제가 필요한 마당에, 하물며 케이블카로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 설악산은 정수리부터 무너져 내릴 것이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설악산은 더 이상 국립공원이 아닌 유원지가 될 것이고, 산양은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황윤·김영준 부부
오색 케이블카 사업은 환경파괴 우려가 높아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에서 이미 두 번이나 부결된 바 있다. 그럼에도 강원도와 양양군은 사업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케이블카 증설과 함께 전국의 주요 산악지역에 호텔과 의료시설, 휴양시설 등이 들어설 수 있도록 관련법을 고치려 한다. ‘산악판 사대강 사업’인 것이다. 강의 죽음에 이은 산의 죽음은 재앙을 부를 것이다. 유구한 세월 속에 자연이 만든 걸작, 설악산을 파괴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오는 4~5월, 오색 케이블카 사업의 가부를 놓고 중요한 분수령이 될 회의가 국립공원위원회에서 열린다. 위원회가 부디 국립공원을 지켜야 하는 본연의 존재이유를 잊지 말고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길 기대한다. 서울에서도 산양을 볼 수 있다. 녹색연합은 산양을 그린 그림들과 무인카메라에 찍힌 사진들을 모아 ‘산양 전시회’를 연다. 대학로 이음책방에서 1월5일부터 31일까지 열리는 전시 기간 중 하루는 박그림님의 산양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어미 산양은 새끼를 밴 채 혹독한 겨울을 난다. 부족한 먹이와 추위에서 살아남아 이듬해 봄에 한 마리 새끼를 낳는 산양의 삶은, 한 편의 위대한 서사시이다. 새해가 밝았다. 이 땅의 남은 야생 서식지가 더는 파괴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산양들아, 부디 무사하길. 설악산 어머니 품에서 대대손손 살아왔듯, 앞으로도 자손만대 번창하여 멸종의 위협에서 벗어나기를!

황윤 다큐영화 감독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황윤·김영준의 오! 야생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