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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16 20:38 수정 : 2015.01.18 10:03

황윤·김영준

[토요판] 황윤·김영준의 오! 야생

중년의 나이에 매주 <개그콘서트>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보고 있다. 어릴 적에도 매주 그렇게 보던 프로그램이 <동물의 왕국>과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였다. 티브이에서 본 사나바 초원에는 붉은 석양이 물들었고, 넓은 평원을 거니는 기린의 실루엣은 아직도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있다. 어려서 동물을 그렇게 좋아했는데, 결국 지금 이렇게 수의사가 됐다.

그때 수많은 동물들의 삶을 보며, 나도 언젠가는 저곳에 있으리라는 근거 없는 희망이 있었다. 어렸기에 허용된 희망이었으리라. 나이를 먹고, 사회라는 현실 속에 들어와 잠시 내 일을 찾고자 이리저리 떠돌면서도, 그 꿈은 내 속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던 듯하다. 꿈을 다시 끄집어내준 것은 짧은 기간 방글라데시의 생활이었다. 현실을 알고자 현장으로 나갔고, 공부를 했다. 여러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야생동물을 알게 되었다. 내가 몰랐던 동물들의 세상을 알게 되었고 지고지순한 삶을 살던 너구리 부부의 인연도, 자기의 터전을 찾아 30㎞가 넘는 거리를 헤맨 어린 삵의 이야기도 알게 됐다.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것은 내가 몰랐던 표범의 이야기다. 우리나라 많은 사람들이 호랑이는 잘 알아도, 표범은 아프리카에 사는 동물이라고 믿고 있다. 나 또한 그랬다. 아프리카를 동경하던 내게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내가 알던 전부였다.

표범, 내게는 그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시큰해지는 동물이다. 동물원에 가서도 유독 그 앞에서 오래 머무는 동물이 표범이다. 어느덧 우리의 몸과 마음에서 사라져버린 동물이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이름조차 바뀌어 아무르표범(Amur leopard), 극동표범(Far Eastern leopard)으로 불린다. 하지만 100년 전만 해도 ‘한국표범’(Korean leopard)으로 알려진 우리나라의 대표 동물이었다. 비교적 덩치가 작고, 다리가 짧아 깊은 눈을 피하며, 바위산을 좋아하는 동물로서 한반도의 지형은 한국표범의 대표적인 서식지였다. 아무르강 이북으로는 눈이 많고, 먹잇감이 대형화되어 서식하기 어려운 점도 이유였을 것이다. 전 세계의 9개 표범 아종 중 가장 화려한 무늬와 탐스러운 꼬리를 지닌 한국표범은 일제강점기 해수구제라는 이유와 아름다운 모피를 얻기 위한 과도한 수렵과 밀렵으로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 말까지 대부분의 개체군이 사라졌다. 1970년 경남 함안에서 잡힌 표범은 시가 70만원이라는 슬픈 기사가 흑백사진 한 장과 같이하고 있다.

비록 2003년 지리산에서 그 발자국이 비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도 있으나 10년에서 15년의 야생 평균수명을 고려한다면 한국 내 개체군은 거의 궤멸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의 북쪽 끝을 넘어선, 중국과 러시아 지역에 남은 50마리 미만의 개체가 이제 야생에 남은 전부다. 근친교배에 의한 악영향, 인위적 산불이나 농경지 확대와 같은 서식지 환경의 악화, 모피를 노린 밀렵으로 끊임없이 개체군은 줄어왔다. 호랑이 보전 활동은 그 개체군을 유지하게 하지만, 이 호랑이들은 표범과 먹이를 놓고 경쟁하여 잠재적으로 표범 보전에 위협이 되는 딜레마도 존재한다. 나아가 한반도, 중국, 러시아 접경지대인 두만강 유역 경제개발 프로젝트는 얼마 남지 않은 표범들의 이동을 가로막아 고립시킬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렇게 한국표범은 지구의 전체 자연사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촛불 한 점이 되어가고 있다.

다행히 러시아에서는 표범의 땅 자연보호구를 지정하고 그 보전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만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얼마 전 해외 학회에서 만난 싱가포르 동물원의 한 친구가 한국표범의 근황에 대해 내게 물어봐주었을 때 그렇게나 고마웠었다. 지금도 한국표범이어야 했다. 국수적인 입장에서의 ‘한국’이 아니라, 우리가 없애버린 동물이 다시 자기의 본서식지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점에서 아무르표범이 아니라 다시 한국표범이어야 한다. 겨우 50마리도 채 남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의 표범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 한국인의 의무이지 않을까.

김영준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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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황윤·김영준의 오! 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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