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황윤·김영준의 오! 야생
지난 연말 우리 가족은 철원에 다녀왔다. 목적지는 철원 야생동물구조센터. 정식 명칭은 한국조류보호협회 철원지회이지만, 새뿐 아니라 젖먹이동물들까지 다 구조한다. 고아가 된 어린 삵, 덫에 걸린 너구리를 못 본 척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돌볼 환자는 많지만, 일손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센터를 돕는 ‘철원 서포터스’들이 청소도 하고, 시설 보수도 하기 위해 모처럼 모인 것이다. 김영준 수의사가 할 일은 따로 있었다. 교통사고 당해 다리를 다친 노루의 수술이었다. 놀랍게도 철원 구조센터에는 수의사가 없다. ‘의사 없는 병원’인 셈이다. 귀한 철새들이 많이 오는 지역이고 그곳의 유일한 구조센터인 만큼 마땅히 수의사가 있어야 하지만, 상근 활동가라고는 김수호 사무국장 단 한 사람이다. 운영비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럼 이곳에 구조되어 들어오는 그 많은 다친 동물들은 다 어떻게 될까? 많은 수는 안락사, 운 좋은 동물은 사무국장님의 치료로 목숨 부지. 가끔 ‘밀린 수술’ 하러 오는 의사 선생님의 수술을 받는 경우는 행운에 속한다. 김영준 수의사가 바쁜 일상 짬짬이 철원 야생동물들을 치료하는 봉사활동을 한 지도 벌써 십년이 됐다. 차에 치인 노루의 다리는 재활이 어려워 보였고, 결국 절단할 수밖에 없었다. 다리 하나를 잃은 노루는 앞으로 목숨이 다할 때까지 철원 구조센터에서 살아야 한다. 센터의 장기 요양 환자 중에는, 전선에 다리가 걸려 발 하나를 잃고 십년째 살고 있는 두루미도 있다. 오후에는 트럭에 두루미 먹이를 싣고 민통선으로 향했다. 검문을 마치고 민간인통제구역 안으로 들어가니, 철원평야가 펼쳐졌다. 차창 밖으로 고라니 한 마리가 유유자적 거닐고, 곳곳에서 두루미 가족들이 우아한 날개로 날아다닌다. 나로서는 몇 년 만에 찾은 철원이었기에, 오랜만에 만난 야생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철원평야는 여전해 보였다. 하지만 사무국장님의 말은 달랐다. “민통선 안도 예전 같지 않아요. 저기 공사하는 거 봐요. 무슨 공사들을 저렇게 하는지.” 대형 덤프트럭이 우리 앞을 지나갔다. 저쪽에선 포클레인이 땅을 파고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거의 볼 수 없던 고추냉이 재배용 비닐하우스들이 우후죽순 들어서 있었다. 퇴비용 분뇨차량도 수시로 드나들었다. 논밭에 분뇨가 뿌려지면, 오염된 낙곡을 두루미들은 먹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얼마 안 되는 먹이를 두루미들에게 털어주고 민통선을 빠져나왔다. 두루미의 겨울먹이인 볍씨 낙곡이 많지 않아, 유전자 조작이 분명한 수입 옥수수를 줘야 하는 것이 마음 아팠다. 민통선 주변엔 부동산이 즐비했다. 주민들의 요구, 외지인들의 투기, 정부의 개발 욕구에 밀려 민통선은 점점 북상하는 중이다. 다시 말하면, 야생동물이 그나마 인간 눈치 덜 보고 살 수 있는 민통선 안쪽 땅이 야금야금 줄고 있는 것이다. 계획단계인 디엠제트(DMZ) 생태평화공원의 추진을 홍보하는 전광판이 구조센터 앞에서 위협적으로 번쩍였다. ‘생태’와 ‘평화’와 ‘공원’의 이름으로, 또 얼마나 많은 야생 서식지 파괴가 이어질까.
|
황윤·김영준 부부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