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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3.06 19:26 수정 : 2015.03.08 09:15

[토요판] 황윤·김영준의 오! 야생

1997년부터 2년간 수의사로 방글라데시에서 자원봉사를 한 적 있다. 당시 가축 진료에만 관심이 많았기에, 그곳에서 독수리들이 어떤 일을 당하고 있는지 몰랐다. 얘기인즉슨 이렇다.

방글라데시는 이슬람 국가다. 정해진 방식으로 도축하지 않으면 고기를 먹지 않는다. 당연히 죽은 동물이나 병든 동물은 먹지 않는다. 먹지 않는 동물은 대개 버려지며 당연히 독수리나 자칼, 개들의 몫이었다. 그러니 내가 일하던 목장 주변에는 독수리가 풍년이었다.

귀국 뒤 진로에 대한 고민 끝에 야생동물 의학을 공부하기로 하고, 몇 년이 지나서야 힌두스탄(히말라야와 데칸 고원에 둘러싸인 지역) 쪽의 독수리 문제를 알게 되었다. 10여년이 지난 2010년 방글라데시를 재방문했다. 야생동물에 관심이 있으니 응당 그곳에 있어야 할 독수리들을 살펴보았고, 이미 대부분 사라졌음을 확인했다.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네팔 등지에 서식하는 독수리류 4종은 이미 95% 정도가 사라졌고, 특히 흰등독수리는 99%가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15년 만에 2만마리가 200마리가 되었다는 의미다. 이 엄청난 죽음의 주범으로 지목된 것은 축산 약물이다.

가축에게 사용한 디클로페낙이라는 비스테로이드성 해열소염제의 잔류물질이 문제였다. 이 약물은 집스(Gyps)속의 독수리류에게 유독 특이한 반응을 보이는데, 소량으로도 신장기능 장애와 통풍을 야기해 폐사시킨다. 이 지역에서 문제가 된 이후에 약물 사용이 금지됐으나, 아직도 저렴한 가격에 유통된다고 한다. 독수리의 떼죽음이 아직 끝나지 않았단 의미다.

전세계적으로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독수리류가 유독 늘고 있는 국가가 한국이다. 한국은 1990년대 이후 겨울을 보내러 온 독수리의 마릿수가 급격히 늘어 현재는 2000~2500여마리에 이른다. 이들은 10월쯤에 몽골에서 와서 3월께에 돌아간다. 1990년대에는 대개 만 6살 이하의 어린 개체들이 한국으로 많이 왔으나, 현재는 다양한 연령의 개체군이 찾아오고 있다.

한국에 유독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표적인 이유로 꼽히는 것이 인위적인 먹이주기다. 동물 애호가들이 경남 고성, 창녕 쪽에서 도축하고서 팔지 못하는 비계 부위나, 유통기한이 지난 축산물을 독수리 먹이로 주기 시작했다.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는지, 매년 한국을 찾아오는 독수리들이 늘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독수리를 보존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인위적인 먹이주기를 멈추면 단번에 생존 기반을 잃는다.

먹이를 주더라도 이들을 위협하는 요인은 많다. 첫째가 바로 어린 개체들의 먹이 부족이다. 인위적으로 먹이를 주기 때문에 힘이 약한 어린 개체들은 경쟁에서 밀린다. 결국 탈진해 구조되는 독수리의 30% 이상이 영양실조와 기아로 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는 전깃줄이다. 허공을 수없이 가르는 전깃줄은 활공을 위해 큰 날개를 가진 독수리에게는 퍽이나 위험하다. 날개가 부러지거나 관절이 빠져버린다. 대부분 다시는 하늘을 날 수 없다. 셋째는 매년 반복되는 농약중독이다. 이는 밀렵과 관련되어 있다. 오리·기러기를 잡기 위해 맹독성 농약을 사용한다. 밀렵꾼이 채 수거하지 못한 사체는 바로 독수리의 눈에 띄게 되고 결국 떼죽음으로 연결된다. 태어난 10마리 중 한 마리 남짓이 6년생 이상의 번식 가능 연령까지 생존할 수 있다. 이렇게 겨우 낳은 알 하나가 쉽게 사라진다.

알려진 바와는 달리 독수리는 하늘의 제왕도 아니고 그리 용맹하지도 않다. 오리나 닭과도 한 우리에서도 잘 지낸다. 다만 죽은 동물을 빠른 시간 안에 깨끗하게 청소해주는 동물이다. 파리나 해충이 들끓을 수 있는 환경 자체를 빠르게 없애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축산 시스템이 급격하게 변화해 가축 폐사체를 야외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야생동물도 없어져 가는 마당에 독수리류는 먹잇감이 없어진 것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독수리가 인간의 먹이공급에 의존하게 됐다.

황윤·김영준 부부
야생동물 구조와 치료를 업으로 삼다 보니, 죽은 야생동물의 사체를 현장에서 금세 치우는 것을 자주 보곤 한다. 하지만 오히려 야생동물의 사체를 놔두고, 독수리 등이 처리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자연계 순환일지 모른다. 동물의 사체를 너무 깨끗하게만 처리한다면, 청소동물은 이렇게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그들의 역할을 남겨주자.

김영준/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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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황윤·김영준의 오! 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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