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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4.03 19:58 수정 : 2015.04.04 15:01

[토요판] 황윤·김영준의 오! 야생

봄이 무르익어갑니다. 연둣빛 잎이 보드랍게 돋아나고 겨우내 움츠렸던 새싹들도 예쁜 잎을 내놓습니다. 식물들이 바쁘니 동물들도 바빠집니다. 새로이 나는 부드러운 식물은 애벌레가 먹기 좋고, 애벌레들은 새끼 동물이 먹기에 좋은 음식이 됩니다. 상위 포식자는 또 이들을 먹이로 하여 번식합니다. 고로 만물은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게끔 시간을 맞춰 이뤄져 있죠. 봄은 이렇게 많은 새 생명이 탄생하는 시기이고, 그 수가 늘어난 만큼 야생동물구조센터는 바빠지게 됩니다. 이제 잔뜩 긴장을 해야 합니다.

봄철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입원하는 대다수는 아무래도 어린 동물들입니다. 나무를 베다가, 공사를 하다가 떨어지는 새끼 새들은 고스란히 구조센터로 들어오죠. 날이 더워 에어컨을 틀고자 실외기를 확인하니 떡하니 둥지를 만든 황조롱이를 만나기도 합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홀로 웅크린 새끼 수리부엉이가 큼지막한 눈을 껌뻑거리며 신고되기도 하죠. 개선충이라는 외부 기생충에 온몸이 감염되어 꼬물거리는 새끼 너구리가 8마리씩 단체로 구조되기도 합니다. 5월에는 너구리와 삵이, 6월이면 고라니가 쉴 새 없이 신고됩니다. 7월이면 소쩍새, 솔부엉이, 새호리기 등 여름철 우리나라를 찾는 어린 여름새들이 구조됩니다. 정말이지 눈코 뜰 새가 없습니다. 전국 야생동물구조센터의 2011~14년 약 2만2000여건의 구조기록을 살펴보니, 매년 4월부터 7월에 연간 구조 수의 절반이 넘는 동물이 구조됩니다. 미아가 차지하는 비율은 20.6%입니다. 즉, 구조동물 5마리 중 1마리는 어린 상태로 들어오고, 바로 4월에서 7월에 집중되는 것입니다.

구조 업무만 많아지는 게 아닙니다. 단순히 일만 처리하자면 구조된 새끼들을 키우면 그만이지만, 야생성을 살려 돌려보낼 궁리도 해야 합니다. 너무 어린 동물은 ‘각인’이라는 과정을 거칠 수 있습니다. 너무 어려서 자기가 너구리인 줄, 황조롱이인 줄 모르고 사람에게 의존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정상적인 정신상태가 아니기에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영원히 돌아가기가 어렵겠죠. 조그마한 공간에서 생을 마감해야 합니다. 그런 문제를 막기 위해서 가면을 쓰기도 하고 해당 종의 박제를 이용하여 스스로가 누구인지 알려주기도 합니다. 다시 부모에게 돌려보내는 시도도 해야 합니다. 그 누구보다도 그 부모가 가장 잘 키우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무런 대책도 없이 돌려보냈다간 다른 동물에게 잡아먹히기도 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어미가 사고를 당한 경우도 있어 무인센서카메라 등의 장비를 설치하여 살펴야 합니다. 지역이 멀면 매일 살피기도 어려워 이 또한 포기해야 합니다.

아이를 키워본 부모는 아실 겁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젖 달라고 보채고, 오줌 쌌다고 우는 아이를 말이죠. 내 자식이니 망정이지 다른 집 자식이라면 정성 쏟기 어려울 겁니다. 동물은 일반적으로 체중에 따라 한번에 먹는 양이 다릅니다. 새끼 너구리는 200g 내외죠. 잘 자라는지 매번 체중도 재야 하고, 항문을 자극하여 배변도 시켜줘야 합니다. 어미가 핥아주는 것처럼 말이죠. 먹는 양도 조금씩밖에 먹질 않으니 20마리 돌보고 있으면 동이 틉니다. 알람 맞춰두고 선잠 자가면서 먹여야 겨우 살립니다. 작은 새들은 더합니다. 다 큰 녀석이 25g 안팎 나가는데 새끼들은 오죽하겠습니까? 30분, 1시간 단위로 20일은 챙겨야 합니다. 잘 먹어주면 그 또한 고맙습니다. 먹기 싫다고, 차갑다고 고개 돌리고, 뱉어내고, 코로 뿜어대고, 아파서 열이 오르고, 까불다가 부러지고, 기형으로 태어나 들어온 동물도 있습니다. 한 마리씩 숨이 넘어가면 참 미안합니다.

황윤·김영준 부부
이렇게 구조센터가 바빠지는 것이야 새끼 동물이 많아지는 이유도 있지만, 또 다른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납치’입니다. 섣부른 판단에 의해 도움이 불필요한 새끼를 구조하게 되는 것이지요. 만약 새끼 동물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상태가 나쁘지 않고, 주변에 어미로 보이는 동물이 머물거나 둥지 같은 은신처가 있다면 구조할 상황이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새끼 동물을 구조한다는 것은 어미 동물의 입장에서는 자식을 납치당하는 것과 같은 경우이겠지요. 이러한 아이러니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당장 구조하는 것보다 해당 기관에 연락해 도움을 받는 것이 그 어린 동물을 돕고, 나아가 일에 지친 구조센터 직원들을 돕는 길입니다.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병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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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황윤·김영준의 오! 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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