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황윤·김영준의 오! 야생
미국 뉴욕 한복판. 센트럴파크에 있는 동물원에서, 어린이들이 북극곰에게 물려 죽은 사건이 있었다. 국내 동물원에서도 우리를 탈출한 호랑이에게 사육사가 물려 죽은 사고가 있었고, 얼마 전에는 사자에게 사육사가 물려 숨진 사고도 있었지만, 이는 국내 동물원의 열악한 사육 환경을 증명한 사건들로서 뉴욕 동물원의 경우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뉴욕의 동물원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북극곰 전시장과 관람객 사이에 연못이 있었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연못에 뛰어들어가 곰 주위로 헤엄칠 수 있으면 어디 한번 해보라고 말한다. 그러자 아이들이 물로 뛰어들었다. 무료하게 지루함을 견디던 북극곰은 물에서 허우적대는 아이들을 앞발로 후려쳐 공격했고 비참한 결과가 일어났다. 당시 이 사고를 놓고 아이들을 비판하는 말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푸에르토리코 출신이었다. ‘가난한 나라의 교육받지 못한 어리석은 아이들이 맹수 옆에서 까불다가 죽음을 자초했다’는 것이 당시 많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그러나 철학자이자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는 전혀 다른 해석을 내린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라는 책에서 에코는 이렇게 말한다. “내 생각엔 오히려 아이들이 텔레비전을 보고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물속에 뛰어든 것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그 아이들은 바로 그 학교와 대중매체 때문에 희생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떳떳하지 못한 마음이 반영된 그릇된 학교 교육과 방송 프로그램 때문에 말이다. (중략) 동물을 인격화하고 아이들의 친구 같은 존재로 만드는 것이 문제라는 얘기다.” 에코의 해석에 10000% 동의한다. 동물을 존중하는 것과 그들을 인격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은 엄연한 야생동물이고, 북극곰은 생태계 최상의 포식자다. 이런 북극곰이 각종 매체에서 어떻게 묘사되는가? 사람의 말을 하고, 사람 옷을 입고, 아이들의 ‘친절한 친구’로 등장한다. <뽀로로>를 보라. 장난꾸러기 펭귄 ‘뽀로로’와 사고뭉치 여우 ‘에디’의 뒷수습을 하는 것은 언제나 듬직한 북극곰 ‘포비’ 아닌가! 아이들은 뽀로로를 사랑하지만, 남극 펭귄이 지구온난화로 멸종위기에 놓였다는 사실은 모른다. 아이들은 ‘포비’를 사랑하지만, 야생 북극곰이 역시 지구온난화로 멸종위기에 놓였다는 사실은 모른다. 또한 실제로 북극곰을 만나면 우리는 최대한 빨리 도망갈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현명하지만, <뽀로로>에서 포비는 사고뭉치 동생들을 돌봐주는 큰형 같은 존재로 등장한다. 심지어 청량음료 회사에서는 초상권료도 지불하지 않고 북극곰을 광고모델로 이용한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아이들은 교육을 못 받아서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 교육의 과잉으로, 혹은 잘못된 교육으로 희생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맞을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교육’이란, 비단 공교육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 애니메이션, 동화책, 광고, 캐릭터 상품 등 일체의 문화와 산업 속 의식화 과정을 포함한다.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을 무조건 위험한 존재로 적대시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들의 생태 그대로 이해하자고 말하는 것이다. 야생동물을 ‘의인화’하는 것의 위험, 그리고 인간 멋대로 ‘교감’이라 이름 붙이는 모든 종류의 일방적 관계 혹은 학대에 대해 경계하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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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김영준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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