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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5.15 19:40 수정 : 2015.05.16 14:05

[토요판] 황윤·김영준의 오! 야생

지구라는 행성에는 수많은 동물들이 각자 제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산다. 특히 우리나라같이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대에는 철 따라 많은 생명들이 드나든다. 날개가 있는 새들은 생존에 적절한 온도와 먹이를 찾아 멀리 이동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가장 극적인 경우는 북극제비갈매기라는 새인데, 북극에서 남극을 매년 오가며 연간 7만㎞를 비행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새만 살펴봐도, 수년 동안 자신이 사용하던 둥지를 찾아오는, 몸무게가 고작 14g 안팎인 제비도 있다. 동남아에서 그 먼 거리를 날아와 다시 제 집을 찾는다. 수많은 철새들은 계절에 따라 무질서하게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꽤 많은 사례에서 다시 그 장소를 찾는 것이 알려지고 있다. 추적장치와 기술이 개량됨에 따라 이동경로도 구체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비단 철새만이 아니다. 30㎞ 넘게 떨어진 곳에서 방생된 수리부엉이가 다시 원위치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왕복 100㎞가 넘는 거리를 떠돌고 난 뒤 정확히 자신의 산으로 돌아온 어린 수리부엉이도 있다. 장거리를 이동하는 철새가 아닌 바에야 이러한 지리감각을 가질 필요도 없을 듯 보이지만, 어쨌든 그들은 정확하게 돌아왔다.

원인을 모르는 충돌로 인해 어깨뼈가 부서져 무너져버린 어린 참매가 전남 홍도에서 발견된 적이 있었다. 홍도 옆 섬 흑산도에 위치한 국립공원관리공단 철새연구센터의 결정으로 구조센터에서 열달이 넘는 치료와 재활이 시작됐다. 하지만 야생에서의 생존이 확실하지 못한 상태에서 방생 결정이 쉽지 않았다. 결국 조심스럽게 방생했고 약 석달간 주변에서 머물던 참매는 갑자기 사라졌다. 잘 살아갈 거라는 근거 없는 바람만 남기고서. 그로부터 열 달이 흐른 지난 2월, 국립공원 철새연구센터에서 이 참매가 자랑스럽게 살아있다는 연락이 전해졌다. 방생 장소에서 235㎞ 떨어진, 원래 자신이 살던 서식지로 돌아간 것이다. 무엇이 그를 고향으로 이끌었을까? 살아갈 만한 곳이 많은 육지를 놔두고 왜 다시 외딴섬으로 향했는지 모르지만, 어쨌건 그들에게 필요한 집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귀향 본능은 날개를 가진 새들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다. 구조센터에서 간혹 재미있는 경험을 하곤 한다. 개선충이라는 외부기생충에 감염된 너구리가 있었다. 피부에 감염되기 때문에 피부 상태가 엉망이 되고 털은 다 빠지고 매우 흉측한 상태로 변한다. 외국에서 ‘몬탁괴물’이라고 불리며 외국 단신에 종종 나오는 이 동물들의 상당수는 이 질병에 걸린 라쿤이나 여우, 코요테다. 어쨌거나 열심히 치료한 덕에 너구리는 잘 회복하여 야생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녀석이 살던 곳은 질병이 감염된 곳이어서, 다시 그곳으로 돌려보내면 재감염될 게 확실했다. 새로운 서식지를 골라 방생하고 잘 살아남길 바랐다.

일년 정도 지난 어느 날, 구조센터 인근에서 너구리 한 마리가 이 질병에 걸려 구조되었다. 이런저런 검사 중에 인식칩이 박힌 걸 알게 되었다. 놀란 직원들은 자료 추적을 통해 이 너구리가 우리가 일년 전 방생했던 녀석과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동거리가 직선으로 무려 28㎞에 달했고 11개가 넘는 큰 도로들을 건너온 셈이었다. 물론 얼마나 떠돌았는지 알 수 없고, 왜 다시 우리 주변으로 되돌아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복귀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동물들의 고향은 어딜까, 되돌아가려는 종착점은 과연 어디일까? 그 고향은 안전한 것일까?

황윤·김영준 부부
한국의 산하는 여전히 개발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산은 시뻘건 속을 드러내며 깎여나가고, 구불구불한 강은 직선을 그으며 흐르고 있다. 집이 사라져간다. 환경영향 저감방안이라는 미명 아래 대체서식지를 만들고 이곳으로 동물들을 이주시키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들의 본성에는 여전히 원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남아 있을 것이다. 대체서식지를 만든 그곳의 원주인은 어떻게 할 것이며, 그리 만들었다 하더라도 제 고향을 되찾아가는 수많은 동물들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병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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