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황윤·김영준의 오! 야생
지난 주말, 전주동물원을 둘러보던 중 한 아시아코끼리의 행동이 눈에 들어왔다. 건초를 가져다가 물에 담근 뒤 적셔서 먹고 있었다. 건초만 먹는 것보다, 물만 마시는 것보다, 건초를 물에 적셔서 먹는 것이 더 맛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어쩌면 맛보다는 ‘재미’로 그랬을 수도 있다. 코끼리에게는 놀 거리가 아무것도 없었다. 뜨거운 햇빛을 피할 그늘막도 없었다. 목욕을 할 수 있는 물웅덩이도 없었는데, 이 코끼리는 철제 울타리 너머에 있는 물을 코로 간신히 끌어다 쓰고 있었다. 코끼리는 혼자였다. 코끼리가 너무 안쓰러웠다. 그에게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이제 곧 나아질 거야.” 전주동물원이 탈바꿈 준비에 한창이다. 감옥 같은 창살을 걷어내고, 동물들의 야생성을 존중하면서 동물 복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한 개방·방사형 공간, 친환경 생태동물원으로 변신할 예정이라 한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전주뿐 아니라 광주동물원도 리모델링할 계획이라 한다. 서울동물원의 변화를 시작으로, 국내 동물원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2001년 동물원에 갇힌 야생동물의 삶에 관한 영화 <작별>을 만들 때는 전혀 가능해 보이지 않았던 변화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며 감격스럽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기존 동물원 중 전혀 변화하지 않은 채 끔찍한 상태로 머물고 있는 곳들도 많다. 삭막한 환경의 이런 동물원에서, 동물들은 머리를 흔들고, 토한 것을 먹고, 똑같은 구간을 하루 종일 반복해서 왔다 갔다 한다. ‘정신병동’이라 해야 맞을 이런 동물원들을 시급히 개선하거나 문을 닫게 해도 부족한 마당에, 새로운 동물원과 수족관, 미니 동물원, 이동식 동물원 등이 난립하고 있다. ‘동물 체험’이라는 이름으로, 동물을 마음대로 만지고 주무르게 하는 업체들이 전국적으로 유행이다. 부천에 있는 한 체험형 동물원은 팬더마우스, 햄스터 등을 거의 제약 없이 아이들이 만지고 떨어뜨리고 꼬리를 잡게 내버려두는데, 심지어 직원이 코아티(미국너구리과의 포유류)의 목에 개 목줄을 채워서 끌고 다니며 아이들에게 만지게 한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하루에도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내 몸을 만지고 주무른다면? 사람을 만지면 추행이고 학대인데, 동물을 만지면 체험이고 교감인가? 아이가 다녔던 어린이집에 ‘동물교실’이 열렸다. 업체에서 한달에 한번씩 온갖 동물들을 데리고 와서 아이들이 만져보게 하고 사진을 찍는 프로그램이었다. 북극여우, 사막여우, 라쿤, 스컹크, 아르마딜로, 프레리도그, 친칠라, 왈라비, 각종 뱀, 거북, 심지어 천연기념물 반달가슴곰까지, 인기가 있을 만한 동물은 모두 동원된다.(이 많은 동물들이 어디서 어떤 경로로 한국에 들어왔는지 전혀 조사되지 않는다. 야자앵무는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 1급 멸종위기종이지만 전시 목적의 밀수가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어린이집에 반생명 교육을 멈춰달라고 요청했지만, 다른 부모들은 좋아한다며 난색을 표했다. ‘동물체험’이 아닌 ‘동물학대 체험’이라 해야 정확한 이런 프로그램은, 아이들의 정서와 세계관에 악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건강에도 위험하다. 살모넬라균은 물론 치명적인 인수공통 조류독감의 위험까지 내포된 이 무분별한 ‘체험’에 아무런 규제가 없다. 업체에서 이용하는 동물 중엔 과일박쥐도 있다. 메르스는 박쥐에게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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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김영준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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