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1.27 21:14
수정 : 2014.06.13 16:42
|
박정윤 수의사
|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이름이 뭐예요?” “아… 그냥 뽀삐… 빠삐라고도 부르고… 이 아이 똥개라서요. 허허.” 문진 때 강아지의 이름을 묻는 질문에 뽀삐의 가족은 머쓱해했다. 일흔은 넘기셨을 지긋한 연세의 노부부가 발바리 뽀삐의 가족이었다.
뽀삐의 가족은 열등생 보호자였다. 진도견을 제외한 강아지 품종은 아는 것이 전혀 없었고, 흔한 애견 상식도 전무한데다 집 안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것은 어색한 분들이었다. 따뜻한 집 안에 한번도 들어가보지 못한 뽀삐에겐 스티로폼 박스가 집이었고, 신문지가 이불이었다. 뽀삐는 병원에 와서도 이불 위에 앉지 않았다.
뽀삐는 이미 심부전 말기였다. 호흡곤란으로 내원한 뽀삐는 심한 폐성 고혈압으로 객혈을 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뽀삐가 몇 해 전에 심장사상충 감염으로 치료를 받았던 병력이 있는데, 그 뒤로 뽀삐 심장이 튼튼하라고 매일 몇 시간씩 함께 산을 탔다고 했다. 심장병 있는 아이가 산을 타다니! 사상충 치료 후에 계속 심장약을 먹이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이렇게 아이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니 화가 날 정도였다.
노부부는 내가 당황스러워할 정도로 비통해했다. 심장이 좋지 않은 뽀삐에게 운동이 되라고 좋은 뜻으로 한 산행이었다고 했다. 심장약을 먹어야 한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라며 펄쩍 뛰었다. 12살 된 뽀삐가 앞으로 5년은 더 살 수 있을 텐데 당신들 때문에 못 살게 됐다며 가슴 아파하고 진심 어린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었다. 그 모습을 접하며 뽀삐를 사랑하는 마음을 얕은 사랑으로 본 것 같다는 생각에 가슴 깊은 곳에서 반성했다.
뽀삐가 하늘나라로 간 다음날, 할아버지는 전날 뽀삐 꿈을 꿨다고 했다. 꿈속에서 뽀삐는 환한 모습으로 마당에 앉아 있었고, 꿈에서 깬 뒤 바로 뽀삐가 떠났다는 전화를 받았다며 “동물은 영혼이 없다더니, 그게 아닌가봐요”라며 눈물을 보였다. 칠십 평생을 가지고 있던 생각이 뽀삐의 꿈 때문에 달라졌다고 했다. 그깟 강아지 때문에 유난이라고 주위에서 뭐라 할까봐 조심스럽기만 했던 분들이 달라질 수 있었던 건 뽀삐가 남기고 간 사랑의 힘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최고의 하우스에 비싼 목걸이와 옷을 입혀 예쁘게 해주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다. 아이들은 무엇을 먹든 어디에 자든 개의치 않는다. 누구와 있느냐가 더 중요해 보인다. 번듯한 자기 집 하나 없고, 얻어온 갈비 한 조각에 행복해하는 아이와 평생을 함께하는 것, 그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수의사가 되기 전의 나 역시 열등한 보호자였다. 16살이 된 야토와 찡보를 처음 키울 때를 돌이켜보면 얼마나 무지했던지 부끄럽다. 그때 우리 아이들을 봐주시던 수의사가 나를 얼마나 한심하게 봤을까 싶다.
부족하지만 이 칼럼을 통해서 아이들과 지내면서 놓치고 지나가기 쉬운 고민들을 다시 해보려 한다. 국가고시를 보고 인턴 수의사가 되었을 때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독자 여러분들을 만나고 싶다. '
박정윤 수의사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