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3.30 19:09
수정 : 2014.06.13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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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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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15살에 자궁축농증 수술을 받고도 거뜬했던 퍼그 ‘코코’. 입원했을 당시 고령의 코코가 워낙 의젓했기에 우리는 그녀에게 ‘코코여사’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병원에 올 때마다 ‘코코여사님, 오셨어요? 침 맞을 시간입니다” 하며 대접을 받던 녀석인데, 1년 뒤 디스크가 재발했다. 코코여사는 척추암이었다. 종양 덩어리가 신경을 압박해서 뒷다리도 앞다리도 점점 못 쓰게 됐다. 하지만 가족들은 힘든 시간을 잘 견디고 있는 코코여사를 위해 의연하게 이별을 준비하기로 했다. 종양이 폐 쪽으로 전이되어 떠나기 전까지 코코여사는 씩씩하게 잘 견뎌주었고, 몇 개월 뒤 하늘나라로 떠났다.
가족들은 이별하는 것이 힘들어서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코코에게 주었던 사랑을 다른 아이에게 나누어주기로 결심한 뒤 유기견 비글 한 마리를 입양하게 됐고, 지금은 ‘해리’라는 이름으로 코코여사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닥스훈트 ‘콩이’의 가족들은 콩이가 떠난 뒤 길고양이 가족들을 돌보고 있다. 중증 근무력증을 앓았던 콩이가 1년여를 누워만 지내는 동안에도 가족들은 콩이가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아픈 아이지만 의젓하고 기특해요. 짧게 왔다가 가려고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가 봐요”라며 콩이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콩이가 아픈 덕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고 하는 가족들의 모습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정도였다.
얼마 전에 우리 병원에 다니시는 분이 강아지 복제에 대해서 문의하신 적이 있었다. 림프암 진단을 받고 치료중인 아이 때문에 힘들어하던 중에 강아지 복제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정말 “똑같이” 나온다고 했단다. “늘 당신 곁에 있던 그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로 지금, 여러분을 찾아갑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광고 앞에서 고민하고 망설이는 보호자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많이 아픈 아이를 앞에 두고 똑같은 아이를 복제해서 그 아이 대신 키우려는 마음을 아픈 아이가 알면 무척이나 당황스럽지 않을까 하고.
곧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불치병을 앓는 아이를 보면서 이별 없이 오래오래 같이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보호자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분께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를 전달했다. “저라면 안 하겠어요.”
시간이 지나고, 동물복제가 더욱 대중화가 되면 복제된 아이들이 많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면 10년간 병원에 오던 ‘똘이’가 아프고 세상을 떠난 뒤 똑같은 똘이가 다시 병원을 다니게 되려나. 그럼 난 그 애를 ‘똘이’로 바라볼 수 있을까. 복제한 아이가 오랜 시간 함께한 그 아이와 정말 ‘똑같은’ 아이일까? 함께한 시간만큼 서로가 가졌던 감정도 기억도 익숙함도 똑같을 수 있을까?
생김새만 같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꼭 그 아이여야 하는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이별을 인정하고 아름답게 이별하는 것이 떠나는 아이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도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 아이가 아니어도 또다른 새로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방법일 게다. 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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