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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왼쪽 다리가 절단된 백구. 할머니의 양말을 갖고 놀고 있다. 박정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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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영등포에서 온 10살 발바리 백구. 왼쪽 어깨와 팔뚝에 걸쳐 자기머리만한 종양을 수술하기 위해 내원했다. 3년 전에 처음 종양이 생긴 뒤 두번의 제거 수술을 받았다는 백구는 재발을 막기 위해서 앞다리 전체를 절단해야 하는 큰 수술을 결정해야 했다. 병명은 침습성 지방종(infiltrative lipoma)으로 중년령 이상의 비만한 개들에게 발병하며, 특히 암컷 리트리버의 발병률이 더 높은 질환이다. 컴퓨터 단층촬영(CT) 결과 종양의 침습 정도는 심각했다. 게다가 이미 세번째 수술이었기에 결국 절단수술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결과에 절망하고 쉽게 수술을 결정하지 못했다. 다리를 잃은 백구를 가슴 아파서 어떻게 보느냐고. 백구의 경우는 나이가 많아 마취가 부담되고 수술도 적절한 시기에 있기 때문에 절단수술이 가장 적합하다고 말씀드리면서도 나는 백구의 가족이 아니기에 수술 후 함께 살아갈 가족이 다리 없는 백구를 보고 어떤 마음일지 솔직히 불안했다. 정말로 예뻐하는 아이지만 사고로 다리를 잃거나 병을 얻어서 걷지 못하게 되는 경우 당사자인 동물보다도 사람이 받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큰 것이 사실이다. 자기 아이가 불구가 된다는 사실에 힘든 건 물론이고, 어떤 경우는 절단수술 후 다리가 없는 아이를 옆에서 보는 게 힘들어서 키우는 것을 포기하기도 한다. 절단수술뿐 아니라 안구 적출 등으로 한쪽 눈을 잃게 되는 경우에도 아이를 유기하거나 아픈 눈이라도 제거하지 않고 남겨두길 원하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 백구를 보면서 대학병원 근무 시절, 교통사고로 골반과 다리를 다쳐 내원했던 장모(긴 털) 닥스훈트 구찌가 생각났다. 자기에겐 너무나 자랑스럽고 예쁜 아이라고 말한 보호자는 수술 후에도 구찌가 다리를 절뚝거릴 수 있다는 말에 아이를 포기했다. 주인에게서 안락사 비용을 받고 구찌를 우리 집에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구찌는 다리를 약간 절기는 했지만 공놀이도 뜀뛰기도 잘했던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아이의 삶의 질을 운운하면서 남들이 바라보는 눈이나 자신의 기준을 너무 내세우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다. 다리가 없거나 눈이 한쪽 없어서 남들 눈에 예쁘게 보이지 않더라도, 소중한 생명을 연장할 수 있고 생활하는 데 고통이 없다면 그것이 진정한 아이의 삶의 질을 생각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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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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