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4.27 21:08
수정 : 2014.06.13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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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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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고급 승용차가 더러워질까봐 개를 트렁크에 실었다. 그 아이는 목줄이 매인 채 차에서 떨어져 매달려 가다 죽었단다. 개를 물건으로 생각하니 트렁크에 실었겠지 싶어 화가 났다.
그 전날 우리 병원 앞에 강아지가 쪽지와 함께 버려져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한두살 먹은 어린 몰티즈. 쪽지를 보니 강아지의 이름은 ‘럭키’란다. 뇌수막염 진단을 받았는데, 검사비와 약값이 부담돼 럭키를 포기한다며 엠아르아이(MRI)와 시티(CT)를 찍어주고 더불어 좋은 보호자를 찾아주길 바란다고 쓰여 있었다. 쯧, 병원 앞에는 시시티브이(CCTV)가 있는데…. 도망간 그가 남긴 “럭키야! 미안하다 사랑했다”는 편지를 읽으며 ‘짱이’라는 아이가 떠올랐다.
8살 된 닥스훈트 짱이는 오징어 다리를 한개 먹였더니 새벽부터 걷지도 못하고 옆으로 누워서 소리만 지른다며 보호자와 내원했다. 경추부위 디스크가 손상되어 사지마비를 보이는 짱이는 배뇨·배변을 스스로 하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보호자는 너무 아파하는 게 안쓰러우니 안락사를 원했고 우리는 거절했다. 그러자 전날 갔던 병원에서는 일단 이물 제거 수술을 해보고 걷지 못하면 그때 안락사 해준다고 했단다. 그 말을 듣고 오지랖이 발동하여 5번만 치료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5번의 치료 뒤 아이는 스스로 엎드릴 수 있을 만큼 눈에 띄게 좋아졌지만 걷지는 못했다. 보호자는 아이가 못 걷는 게 고통스러울 거라며 안락사를 요구했다. 병원비도 부담돼서 그만 포기하고 싶다는 그를 이해해보려 애쓰고 있는데, 다음 얘기가 가관이었다. 자기는 손을 떼지만 병원에서 계속 데리고 더 치료를 해볼 생각이라면 그것까지는 말리지 않겠다는 것 아닌가. 그런 보호자를 바라보며 나는 말했다. “아닙니다. 원하는 대로 안락사를 할 겁니다.”
잠시 불편한 침묵 뒤에 보호자는 언제 안락사를 할지 알려달라고 말했다. 짱이를 안락사시키기 전에 아이의 귀를 파주고 좋아하는 고기 간식을 먹이고 난 뒤 안락사를 시키고 싶다면서. 순간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며 화가 치밀어 하마터면 한 대 칠 뻔했다. ‘키우지 말란 말이다! 아이를 죽이면서 그런 식으로 자기위안을 삼겠다고? 절대 그렇게 해줄 수 없어!’ 그가 생각하는 나름의 고운 이별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한 달쯤 뒤 짱이는 걸을 수 있게 됐다.
때때로 생명에 대해 배려하지도 존중하지도 않는 사람들의 무책임과 이기심을 대할 때 나는 혼란스럽다. 한 생명을 포기하거나 양육을 포기하는 것에 부끄러움 하나 없이 슬픈 이별 정도로 추억을 간직하는 건 너무 뻔뻔한 일이 아닌가. 자신이 선택한 결정에 대해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 그래야 충동적으로 이쁘다고 덥석 동물을 키우는 일은 없을 테니까. 동물도 감정이 있고 생각이 있다. 약간의 눈물과 미안함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이들이 어떻게 해야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불편함과 죄책감을 느낄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려 한다. 일단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순서일 테니, 럭키를 버린 주인의 시시티브이 사진부터 병원 앞에 대문짝만하게 걸어둬야겠다. 책임지지 못할 바엔 키우지 말란 말이다.
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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