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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5.18 20:38 수정 : 2014.06.13 16:37

박정윤 수의사

[토요판] 생명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18년 전 이맘때구나. 동네 애견숍을 지나다가 조그만 몸에 금색 목걸이를 한 너를 보고 가던 길을 멈췄지. 27만원을 부르는 아줌마에게 깎아달라고 졸라서 25만원을 주고 덥석 충동구매한 강아지가 너였어. 처음으로 생긴 내 강아지라는 생각에 사전을 뒤져가며 산토끼라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 ‘야토’. 나중에 지나고 보니 너는 다른 코커스패니얼보다 털도 짧고 덩치도 작더구나. 소위 말하는 ‘순종’이 아닌 코커스패니얼이었지만 나는 부득부득 ‘개량종’이라 우겼어. 그렇게 시작한 너와의 동거는 동물을 좋아해서 막연하게 수의학과를 가겠다고 생각한 나에게 가족으로 동물을 키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걸 몸소 느끼게 해줬지.

난 그때 어린 강아지는 산책도 목욕도 안 된다는 것도 몰랐고, 접종을 2주 간격으로 5번이나 해야 하는지도 몰랐어. 뭐가 그리 할 게 많은지…. 귀도 닦아줘야 하고 발톱도 깎고 몇달에 한번씩은 털도 밀어줘야 해서 과외비의 전부는 너를 돌보는 데에 다 들어간 것 같아. 미리 알았으면 덥석 너를 데려올 용기가 없었을지도 몰라. 돌아보면 너도 사고를 참 많이 쳤지. 집을 비운 사이 오메가3 영양제 98알을 다 먹어치워서 한밤중에 위세척을 하고 그 비린내에 수의사 선생님을 기절시킨 적도 있었고, 치킨 먹은 봉지를 다 뒤져 먹어서 엑스레이를 찍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어.

그렇게 널 키우면서 다른 동물 키우는 사람들도 만나고, 키우다 버려진 아이들 이야기도 듣게 되고 동물보호소라는 곳도 갔어. 산만하고 부산스럽다는 이유로 버려진다는 코커스패니얼과 아픈 데가 많아 버려진다는 시추가 유난히 많던 그 보호소를 난 아직도 기억한단다.

야토야. 훌륭한 수의사가 되어 너한테 많은 것을 해줄 거라고 약속했는데, 오히려 더 신경써주지 못했던 점 미안해. 너랑 찡보만 있다가 하나둘 업둥이들이 늘어나면서 복닥거리느라 많이 힘들었지? 15살이 넘어서도 너보다 더 나이 많은 꽃님이할머니 때문에 대접도 못 받고 맛있는 것도 맨날 양보했구나.

10살이 넘으니 나이가 들면서 흰머리 나듯 네 얼굴도 하얗게 세더구나. 털은 윤기를 잃고 얼굴은 살이 빠져 뾰족해져가고, 하루 종일 잠만 자는 시간이 늘어갔지. 문소리만 나면 달려오던 너도 가는귀가 먹어 내가 집에 들어가서 네 귀에 대고 큰 소리로 이름을 불러야 잠을 깼어. 나이가 들면서 언젠가는 너와 이별을 할 거란 걸 알기에 늘 마음으로 준비를 해왔는데도 막상 닥치니 이별이란 건 역시 힘들더라. 수의사인 나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시간이 되었을 때는 정말 가슴이 무너질 만큼 힘들었지만 의연하게 이별하려고 애썼단다. 힘들고 치열했던 나의 삶을 함께 버텨준 너에게 감사해. 내게 와줘서 고마웠어. 야토야 사랑해.

2012년 5월9일. 내 동생 야토 하늘로 떠나다.

덧. 나이 든 동물을 돌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그들이 우리를 위로해주었다면 나이가 든 그들을 돌보는 일은 우리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적어도 평생 함께한 가족 옆에서 눈을 감을 수 있게 해주는 것. 무엇보다도 우린 가족이니까요.

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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