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7.20 20:08
수정 : 2014.06.13 16:36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요즘 애가 기운이 없고 식욕이 떨어졌는데 며칠 전부터 소변에 피가 나오네요.”
방광에 염증이 있다고 약을 지어 먹였는데 낫지 않는다고 내원한 몰티즈 밍키. 한눈에도 기운이 없어 보였다. 약간의 탈수와 함께 못 먹어서인지 빈혈까지 와서 잇몸과 귀가 창백해졌다.
“혹시 양파 같은 것 먹이신 적 없나요?”
가족들은 펄쩍 뛰며 양파는 우리 애가 먹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문진과 검사 결과 밍키는 ‘양파중독’으로 진단됐다. 문제는 짜장면과 만두였다. 주말마다 가족들은 탕수육과 짜장면을 즐겨 시켜먹는단다. 특식이니만큼 밍키와 탕수육을 같이 나눠먹고 군만두도 잘라주고, 옆에서 계속 더 달라고 떼를 써서 짜장 양념에 밥을 아주 약간 비벼주었다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결국 들을 수 있었다. 만두와 짜장면에 들어 있던 양파가 밍키의 빈혈과 혈뇨를 유발한 원인이었다.
양파중독은 양파 특유의 향을 내는 성분인 ‘알릴프로필다이설파이드’(allyl propyl disulfide)가 원인이다. 사람에게는 이롭지만 강아지들에겐 독성으로 작용한다. 강아지 적혈구를 파괴해 빈혈이나 혈뇨를 일으키고 청색증, 설사, 구토, 황달 등을 동반한다. 심한 경우엔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질병이다.
많은 사람들이 강아지에게 양파가 해가 된다는 걸 안다. 하지만 밍키네 같은 경우가 의외로 많다. 자신들이 주는 음식에 양파가 들어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먹던 음식을 나눠준다. 불고기, 갈비찜, 닭백숙, 된장찌개, 피자… 생각해보라. 양파가 들어가지 않는 음식이 거의 없다. 양파중독 원인이 되는 성분은 가열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조리에 들어간 양파만으로도 독성이 나타날 수 있다. 병원에서 사람 음식을 주지 말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난번 칼럼에서도 언급했지만 동물이 꼭 사료를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동물이 먹는 음식과 사람이 먹는 음식의 재료는 다르지 않다. 그냥 맹물에 닭을 삶아서 살을 발라준다든지, 고기를 아무런 양념 없이 구워주거나 익혀주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람 음식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 음식에 쓰이는 양념이 문제인 셈이다.
밍키네 가족들은 나의 설명을 들으며 의아해했다. 매주 먹던 만두와 짜장면인데 왜 새삼스럽게 중독 증상을 보이는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어제까지 양파 든 음식을 먹고 괜찮다가도 오늘 똑같은 음식을 먹고 ‘새삼스레’ 치명적인 중독 증상을 보일 수 있는 게 양파중독의 무서운 점이라고 설명드렸다. 지금까지 정말 운이 좋았다는 말을 덧붙이며.
밍키는 수혈과 입원 치료를 받은 뒤 회복돼 건강을 되찾아 퇴원했다. 가족들은 혹시라도 잘못될까봐 며칠을 울며 걱정했던 긴장감이 풀렸지만 엄청난 병원비를 치러야 했다. 짜장면과 탕수육은 쳐다보기도 싫다는 쓴웃음과 함께.
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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