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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8.10 20:06 수정 : 2014.06.13 16:34

박정윤 수의사

[토요판] 생명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어릴 때부터 피부병을 달고 살았다는 10살 코커스패니얼 ‘루루’가 어디가 아픈 것 같다고 내원했다. 매사에 의욕이 없고 먹을 때 외에는 늘 잠만 잔다는 루루. 뚱뚱한 탓인가 해서 운동을 시켜도 움직이려 안 한단다. 최근 들어 피부도 더 나빠지고, 바빠서 잘 놀아주지 못해서 마음의 병이 온 것 같다고 자책하는 가족의 옆에 앉아 있는 뚱뚱한 루루는 정말 우울해 보였다.

배와 사타구니 쪽 피부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엉덩이를 땅바닥에 하도 끌고 다녀 털이 하나도 없고 피부가 코끼리 피부처럼 변해 있었다. 특히 배 쪽은 피부가 얇아지고 속살이 훤히 드러나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아 한눈에 보기에도 심각했다. “피부는 언제부터 이랬나요?”라는 나의 질문에 피부는 늘 안 좋았단다. 아토피성 피부 질환이라고 진단받고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다는 루루는 피부병의 원인이 음식 때문이라 들은 뒤부터 사료 외에는 먹은 적이 없다고 했다. 피부 치료는 했지만 호전이 없어 중단한 상태라 했다.

새침한 외모의 8살 포메라니안 ‘알렉스’도 몇 년째 티셔츠를 벗은 적이 없다. 미용을 하러 내원한 알렉스를 보며 나는 깜짝 놀랐다. 입고 있던 옷을 벗으니 등에 털이 하나도 없어서, 분홍색 속살이 드러나고 군데군데 ‘골룸’처럼 털이 나 있는 것이 아닌가! 등만 보면 배 나온 골룸이었다. 몇 해 전 털을 짧게 밀고 난 뒤 털이 안 나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피부에 좋다는 영양제를 먹어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했다.

루루와 알렉스는 같은 질환이었다. 검사 결과 진단명은 ‘갑상선호르몬 기능 저하증’. 체중 증가와 농피증, 화농성 피부염, 탈모 등이 주요 증상인 갑상선 기능저하증은 무기력, 식욕 증가, 권태, 추위를 많이 타는 증상도 함께 보일 수 있다. 중년의 개에서 주로 발병하며 코커스패니얼, 미니어처슈나우저, 닥스훈트, 골든리트리버 등이 자주 나타나는 품종이지만, 소형견을 많이 키우는 우리나라에서는 요즘 시추, 포메라니안, 발바리들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단순한 피부병으로 오인되어 피부 치료만 받고 있다는 점이다. 말로 자기표현을 하지 않는 아이들이니 무력감이나 피로, 권태, 우울증 등으로 알아채기는 어려우니 탈모나 피부 염증이 두드러지기 마련이다.

피부질환이 만성적으로 지속되거나 피부 치료를 하고 있어도 호전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면 병원 선생님과 상의해서 정확한 검사를 해보자. 또 정기적인 일반 혈액검사에서 중성지방이나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면 갑상선 질환을 의심하고 상담받는 것이 좋다. 검사 비용이 만만치는 않지만, 몇 해씩 병원에서 약 먹고 치료받는 것을 생각하면 정확한 진단 아래 원인을 찾고 치료를 받는 것이 더 경제적이리라.

갑상선 치료를 받으면서 루루와 알렉스는 놀라우리만치 달라졌다. 루루는 체중도 빠지고 찢어질 것 같던 피부도 많이 좋아졌다. 축 처진 얼굴도 환한 얼굴로 바뀌어 특유의 우울함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알렉스는 민둥산 같던 등에 털이 부숭부숭 나면서 매주 달라지는 모습을 보고 사진을 찍을 정도다. 몇 달 뒤에는 빽빽하게 등에 털이 난 알렉스가 미용하러 오겠지.

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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