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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희와 소희 가족의 강아지 ‘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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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생명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1년 전쯤 동네 동물병원에서 시추를 입양한 쌍둥이 지희와 소희의 가족. 처음 강아지를 키우는 쌍둥이들은 ‘쿠키’(사진)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또래 아이들처럼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도 가고 놀이터에 안고 나가 자랑도 하고 싶은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쿠키는 가족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쌍둥이들이 안으려고 하면 물기 일쑤고, 이름을 부르며 다가서면 으르렁거렸다. 하루종일 방석에 앉아 담요를 조곤조곤 빠는 게 그 아이의 일과였단다.
가족들은 쿠키가 다른 강아지들과 다른 점을 발견했다. 돌아다니면서 거실이나 방 모서리에 머리를 박기가 일쑤인 쿠키를 보며 가족들은 쿠키의 시력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다. 강아지를 처음 키우는데 사납고 눈도 잘 안 보이는 강아지라니. 부모님은 아이들이 실망하고 쿠키와의 동거가 힘들 것 같아 다시 병원에 데려다 줄까도 고민했지만, 쌍둥이들이 완강하게 반대한데다가 병원에서도 쿠키는 몇번의 파양을 당한 아이라 다시 오면 안락사를 할 수밖에 없다는 말에 힘든 동거를 결심했단다. 그리고 가족들은 쿠키가 눈이 좋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쿠키는 ‘망막박리’였고 시력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망막박리란 안구의 안쪽에 부착된 망막이 안저에서 떨어진 질병이다. 망막은 눈에서 카메라의 필름 같은 역할을 한다. 벽에 붙은 벽지가 떨어져 흘러내린 것처럼 망막이 떨어지면 카메라에 있는 필름이 구겨져 상이 맺히지 않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된다. 겉보기에 눈에 이상이 없어서 몰랐을 뿐 쿠키는 어쩌면 입양 당시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으리라.
나는 가족들에게 쿠키의 사나운 행동을 이해시켰다. 보이지 않는 아이가 낯선 곳에서 긴장 상태로 있다 보니 나타나는 방어적인 공격이고 쌍둥이들이 덥석 안으려는 행동에도 깜짝 놀라기 일쑤였을 거라고.
솔직히 눈이 안 보인다는 진단을 하면서 조금은 불안했다. 눈이 좋아질 거라는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던 쌍둥이들이라 쿠키의 시력이 영영 회복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 실망하고 함께 사는 것을 버거워하지는 않을지 싶어서.
쌍둥이들은 조심스레 건넨 나의 이야기에 “괜찮아요. 가족이니까요. 제 동생이잖아요”라며 오히려 자기들이 쿠키에게 서운해했던 것에 미안해하며 눈물을 흘렸다. 나의 앞선 걱정이 부끄러울 만큼 아이들은 쿠키에게 진심이 있었다.
가족들은 눈이 안 보이는 쿠키와 함께 지내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문틀과 가구 모서리에 쿠션 보호대를 설치해서 다치지 않도록 하고, 쿠키를 안거나 만질 때에도 갑작스런 스킨십에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이름을 부르면서 쓰다듬기를 연습했다.
그런데 쌍둥이 자매는 내게 쿠키와 함께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했다. 같이 산책해보는 게 소원이란다. 몇번 가슴줄을 하고 산책을 나가봤지만 밖에만 나가면 땅바닥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으려는 쿠키를 보며 속상했다고 한다. 나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굳이 쿠키에게 산책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너무나 간절한 자매의 소원에 ‘강아지 유모차’를 생각해봤다. 네발이 닿는 안전한 유모차에 태워 쌍둥이들이 함께 달려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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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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