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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9.21 21:07 수정 : 2014.06.13 16:33

화랑이

[토요판/생명]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화랑이는 서울 평창동에 살았다. 다른 진돗개와 달리 사람에게 호의적이고 주사를 맞을 때도 꾹 참는 젠틀한 노견이었다. 화랑이의 아들은 호동이. 태어나서 줄곧 한집에 살았다. 호동이의 엄마는 평창동 산에서 떠돌아다니는 들개 ‘낙랑이’였다. 화랑이가 밖에 나가서 낙랑이를 만나 함께 집에 들어왔고 그 뒤 낙랑이가 호동이를 낳았단다. 출산 뒤 다시 밖으로 뛰쳐나간 낙랑이는 다시 다른 개를 만났고 새끼를 낳을 때 또 화랑이네를 찾아왔다고 한다. 낙랑이는 ‘평창동 히피’라는 별명을 얻으며 10년 동안 그렇게 그 집을 들락거렸다.

희한하게도 화랑이는 낙랑이 하나만을 바라봤다. 낙랑이가 출산할 때마다 매번 자기 집을 내주고 자기 새끼가 아니어도 출산 뒤 끔찍하게 챙겼다. 동네 다른 암캐들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순정파 진돗개’였다.

그러던 어느 날 화랑이네 집 앞에 쓰러져 있는 낙랑이가 발견됐다. 가족들이 낙랑이를 거두었고 둘은 한집에 살게 되었다. 신부전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화랑이는 2년 넘게 말없이 낙랑이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며칠 전 화랑이도 낙랑이를 만나러 하늘나라로 갔다.

병원에 오는 손님들은 덩치 큰 진돗개 화랑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물지 않느냐고 처음에는 겁을 먹지만 이내 화랑이의 웃는 모습에 손님들은 반했다. 화랑이는 사람들은 물론 조그만 강아지들도 무척 좋아했다. 쳐다보는 눈빛이 천생 ‘손주 보는 할아버지’였다. 물론 고양이들은 그를 매우 싫어했지만.

사실 화랑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진돗개는 예민하고 사납다고 생각했다. 물려서 응급으로 오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진돗개 때문이었고, 너무 사나워서 예방접종조차 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토종견이라고 칭송받던 진돗개가 이젠 다루기 힘든 품종이라는 인식이 커져 환영받지 못하는 품종으로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화랑이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동물의 성격 형성에 품종적인 요인은 크게 중요하지 않고 가족이 개를 대하는 태도와 환경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어릴 때 많은 사람을 만나고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도 접촉했다면 진돗개라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호의적이다. 그리고 적당한 가정 훈련으로 참을성을 갖게 해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주인만이 만질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많은 진돗개들을 보며 안타까울 때가 많다. 충성심은 타인에게 적대감을 표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사람이 먼저 가져야 한다. 간혹 주인만 만질 수 있는 자기 개를 보며 자신만을 따르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는데,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납고 주인만 보면 꼬리를 치는 게 충성심이라고 착각한다. 그건 정말 최악이다. 그런 생각이 진돗개를 사납고 예민한 품종으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박정윤 수의사
외국에는 ‘퍼피스쿨’이란 제도가 있다. 출생 뒤 4개월 직전부터 6개월 정도까지 큰 개와 작은 개가 어울려 시간을 보내며 사회성 교육을 받는다. 사람들이나 자기보다 작은 개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강아지들에게도 퍼피스쿨을 권하고 싶다.

화랑이는 내가 본 최고의 진돗개였다. 항상 웃으며 사람을 반기고 배려심 많았던 아이. 지고지순한 순애보로 우리를 감동시켰다. 화랑아, 이제 낙랑이와 편히 지내렴.

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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