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1.02 20:42
수정 : 2014.06.1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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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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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생명]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일주일 전 갑자기 다리에 힘이 없고 맥없이 비틀거리기 시작한 롱다리 몰티즈 ‘하니’. 병원에 간 하니의 가족은 무릎인대가 놀란 것 같다고 진단받고 약을 처방받았단다. 약을 먹고도 큰 호전이 없다고 내원한 하니는 검사 결과 흉·요추 디스크 진단을 받았다. “디스크라고요? 강아지도 디스크 질환이 있어요?”라며 깜짝 놀란 가족들.
같이 살던 다른 강아지와 신나게 놀던 코커스패니얼 ‘화니’도 뒷다리를 심하게 비틀거리고 배를 아파하는 것처럼 등을 구부리는 증상을 보였다. 진찰을 받았는데 관절이 안 좋다는 얘기를 들어 일주일 정도 열심히 산책을 시켰는데, 아예 뒷다리를 쓰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처음에는 술 취한 듯 비틀거리는 정도였는데, 병원에 왔을 때는 뒷다리뿐 아니라 앞다리까지 못 쓰는 상태로 악화됐다. 디스크 질환의 치료 시기를 놓쳤고 엠아르아이(MRI) 검사 결과 안타깝게도 척수신경의 상당 부분이 변성된 상태였다.
생각보다 강아지들에게 디스크 질환은 흔한 편이다. 하니 같은 몰티즈는 물론 시추, 페키니즈, 코커스패니얼, 발바리 등이 품종적으로 디스크 질환이 호발하는 소인을 가지고 있다.
디스크 질환은 척수신경의 압박 정도에 따라 온몸을 부들부들 떨거나, 비틀거리며 걷다가 발등이 꺾이거나, 심한 경우엔 아예 주저앉아 스스로 배뇨·배변을 못하는 상태까지 단계가 다양하다. 사람처럼 전조증상을 세세하게 호소하지 않는 아이들이라 가족들이 느끼기엔 갑작스런 증상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어제까지 잘 놀던 아이가 갑자기 뒷다리를 못 쓰고 주저앉는다든가 앞다리를 고꾸라뜨린 채 기어다니는 경우도 있지만,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린다거나 다리를 살짝 끌듯이 보행 이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뒷다리나 앞다리를 주저앉아 못 쓰는 경우엔 디스크 질환이 분명해 빠른 치료를 받지만, 간혹 하니처럼 미약한 증상을 보이는 경우엔 관절 질환으로 오인돼 치료시기를 놓쳐 병을 악화시키는 상황도 있다.
단계에 따라 약물이나 침술로 치료가 가능한 경우에 수술이 이뤄지는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처음 증상이 나타나고 48시간 안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예후 판결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슬개골(무릎 한가운데 종지 모양의 뼈) 탈구나 십자인대 관련 질환 같은 관절 질환 등으로 오인되어 오히려 근육을 강화시켜준다고 산책을 해서 증상을 악화시키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뒷다리에 힘이 없어 보이면 바로 병원에 가서 신경 검사와 방사선 촬영 등을 통해 진단과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약물과 침술로 치료하는 경우, 완치가 아니므로 재발을 줄이는 관리도 필수적이다. 회복기간은 길게는 1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꾸준한 체중 관리와 물리치료가 필요하다. 침대를 뛰어오르거나 계단을 자주 오르내리지 못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뒷다리로만 서 있거나 깡충깡충 뛰는 행동도 교정이 필요하다. 아이를 안아 올릴 때에도 앞다리만 잡거나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 수직으로 안는 것이 아니라, 허리가 수평이 되도록 아이의 배를 받쳐서 안아 올리는 방법을 취해야 한다.
가족들이 두 눈을 질끈 감고 엄격하게 하니가 움직이지 않도록 가둬두고 운동을 제한하고 침술·약물치료를 시켜주자, 하니는 보행 상태가 회복돼 이제 물리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벌써 자기는 다 나았다며 껑충거리고 뛰고 싶어 안달이 난 하니를 흐뭇하게 보는 가족들에게 앞으로 한달 동안 운동도 미용도 금지임을 다시 한번 강조해드렸다.
디스크는 불치병이 아니다. 증상이 약한 경우에는 약물과 침술로 충분히 호전될 수 있다. 심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시기를 놓치지 않고 적절한 타이밍에 수술하면 안타깝게 휠체어 생활을 하거나 치료를 포기하게 되는 일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잊지 말자. 갑자기 비틀거린다면 즉시 엄격한 운동 제한 뒤 빠르고 정확하게 진단을 받기 위해 병원에 가야 한다는 점을.
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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