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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15일 오전 청와대에서 청돌이와의 모습이 올려져 눈길을 끌고 있다. 이날 아침 이 대통령은 "아침운동을 위해 나서다 청돌이가 함께 가겠다고 지키고 섰다"며, "오랜만에 안아주니 바로 혀를 갖다대더군요, 하하"라며 글을 올렸다. 사진=이명박 대통령 페이스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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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생명]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청돌이의 비밀
13살 코커스패니얼 ‘쭈쭈’는 정말 부잣집 도련님이다. 기사님을 대동한 아버님과 어머님이 쭈쭈를 데리고 오신다. 병원에 오면 흥분해도 집에서는 참 점잖다고 ‘변명’을 하시는 어머님과, “아버님, 어머님 가족 모두 ‘쭈쭈 할아버지’와 건강하세요”라는 문자를 보내면 “우리 쭈쭈 아직도 청춘입니다~”라며 호쾌한 답장을 보내주시는 아버님. 좋은 차, 좋은 집에 좋은 음식을 먹고 여러 사람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는 쭈쭈는 정말 행복하다. 그러나 모든 부잣집, 정승집 아이가 쭈쭈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문 것 같다. 털이 수세미처럼 뭉쳐져 눈을 떴는지도 확인하기 힘든 삽살개 미루. 피부가 찢어지고 고름과 털이 엉켜서 지독한 냄새가 날 때까지 두시면 어떡하냐고 한참 화를 내는데, 데리고 온 사람은 ‘주인’이 아닌 ‘관리인’이란다. 당장 털을 밀고 찢어진 부위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자 막무가내로 털도 못 밀고 수술도 못 한다고 약만 달라고 했다. 관리인 아저씨의 사정은 이러했다. 자기는 원래 정원관리 하는 사람인데 개밥 주는 걸 맡고 있고, 아무도 신경써주지 않아 그나마 자기가 너무 더러워서 목욕시키는데 일이 벌어졌단다. 털이 엉켜 있길래 잘해준다고 가위로 엉킨 털을 자르다가 그만 피부가 찢어졌다. 아저씨는 “회장님이 아시면 큰일 난다”고 했다. 또한 회장님께선 삽살개가 정원에서 털을 휘날리며 뛰어노는 모습을 보기 원하기 때문에 털은 절대 자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어이없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분통을 터뜨리다 ‘아저씨를 곤란하지 않게 하겠다’고 안심시키고 나서야 겨우 회장님의 사모님과 통화를 하고 수술을 할 수 있었다. 미루는 지금 다시 털이 엉킨 채로 통제가 안 되는 들개처럼 살고 있다. 강아지 암수 한쌍을 ‘진상’받은 어느 장관님댁은 관리인이 접종을 한두번 하러 오다가 만다. 일년쯤 뒤엔 새로운 암수 한쌍이 내원한다. 진순이 진돌이, 그다음에도 다시 새로운 진돌이 진순이…. 한번은 파보장염에 걸려 아이가 다 죽어가는데도 ‘시골로 내려갈 거라 치료 안 하고 데려가겠다’고 해서 크게 다툰 뒤 다시는 병원에 오지 말라고 한 기억이 난다. 사람들은 부잣집에 사는 동물들이 행복할 거라 생각한다. 하다못해 고기 한점이라도 더 얻어먹지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부와 명예가 항상 동물에 대한 배려와 비례하는 건 아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춘 집에 하나쯤 있어야 할 장신구처럼 존재하면서, 누가 자기 가족인지도 모르고 들개처럼 지내는 아이들도 많다. 출퇴근길에 인사 정도만 하는 주인이 가족일까, 밥 주고 관리하는 사람이 가족일까? 누구와 희로애락을 나누며 교감할 수 있을까? 누가 가족인지 모르고 사는 거라면 아무리 좋은 집에 산다 해도 행복할까? 한번은 어린 진돗개가 내원했다. 정신없이 뛰어다녔는지 발바닥에 있는 패드가 반쯤 벗겨졌다. “일단 치료해주세요” 하길래 역시 ‘주인이 아닌 관리인이군’ 하며 소독하는데, 겁먹은 그 아이가 진료대에 똥오줌을 싸며 난리를 친 탓에 애를 먹었다. 처치를 마치고 아이의 상태와 예후에 대해 알려드린 뒤 다음에는 보호자가 꼭 오시라고 당부했다. 아이는 착한데 손을 많이 안 타서 겁이 많고 나중에 크면 통제가 안 될 수 있으니 보호자가 자주 놀아줘야 한다는 말과 함께. 오후가 되니 진돗개의 상태를 재차 확인하는 전화가 여러 통 걸려왔다. 모두 보호자는 아니고, 여러 명의 관리인이었다. ‘진돌이’ ‘청돌이’로 불리는 이름이 제각각이었다. 이름을 모르는 건지, 이름을 알려주지 않으려 하는 건지…. 관리인들에게 같은 말을 여러번 반복해서 알려주다가 결국 나는 “그냥 보호자와 직접 통화할게요! 보호자와 상의할 테니 전화를 달라고 해주세요! 아니면, 보호자분이 직접 오실 순 없나요?”라고 버럭 화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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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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