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2.22 20:44
수정 : 2014.06.13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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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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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생명]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우리 병원은 나이 든 동물환자들이 유난히 많다. 내원하는 아이들의 평균 나이가 12살. 사람으로 치면 예순이 넘는다. 만 20살인 ‘짱구 할아버지’가 가장 나이가 많다. 중성화가 안 됐던 짱구 할아버지는 지난해 고환염으로 크게 고생해서 수술을 했고, 다행히 수술이 잘 끝나 건강하고 회춘하는 모습이었는데, 그저께 다시 걷지 못하게 되면서 내원했다.
디스크와 신부전이 있는 짱구 할아버지는 간에 커다란 종양이 있는 것이 발견됐지만 수술은 하지 않기로 했다. 걷는 것을 힘들어하지 않게 통증치료를 하면서 지켜보는 중인데, 할아버지는 하루하루 기운이 떨어진다. 이번에는 정말 떠날 것 같아 모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얼마 전 처음 내원한 짱. 우리는 그 아이가 더이상 힘들어하지 않도록 보내주었다. 좋아하는 사람들 곁에서 엄마의 품에 안겨 안락사로 세상을 떠났다. 너무 커진 복강 내 종양이 직장을 눌러 변을 보지 못했던 짱이는 시티(CT)검사에서 종양 제거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고, 며칠 사이 요도를 압박할 정도로 종양이 커져 소변을 보지 못하고 요도 카테터(삽입관)조차 들어가지 않게 됐다. 얼마라도 살 수 있게 종양의 일부라도 제거하려고 했지만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은 짱이를 더 힘들지 않게 하려고 마음을 내려놓았다.
오랜 시간 함께 산 노령견들을 보면서 가족들은 고민한다. 어떻게든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매달리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고통을 더 주기 전에 안락사를 시켜야 하는지 고민하며 힘들어한다. 현실적인 문제와 더불어 무엇이 아이들을 위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가족들을 지치게 하는 것 같다.
실제로 나는 보호자에게 “지금 아이가 많이 힘들어하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힘들어하면 보내주고 싶다는 생각도 하는 것이리라. 희망 없는 아이를 힘겹게 수명만 며칠 더 연장하는 것은 나 역시 반대다. 하지만 보내줄 때를 ‘우리가 힘든 시점’으로 판단하지 않았으면 한다. 의식이 있고 의사 표현을 하고 스스로 음식을 먹는 경우, 인위적으로 목숨을 끊는 것은 분명 후회할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우선 아이들이 사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치료하는 데 목적을 뒀으면 한다. 짱구 할아버지처럼 오래 산 친구라면 당연히 건강하지 않은 부분이 너무나 많다. 모든 것을 젊은 시절로 되돌릴 순 없다. 그렇다고 아무런 처치를 안 해주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검사 뒤 적절한 약물 처방과 보존 치료로 사는 동안 편히 지내도록 해주는 것이 좋다. 일단은 검사 후 얼마간 집중적인 치료를 받아보자. 그래도 호전되지 않으면 의사와 상담 뒤 호스피스를 준비하길 바란다. 집에서 떠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주자.
마지막으로 짱이처럼 아무것도 해줄 수 없고 지금 이 순간 느낄 게 고통밖에 없다면 보내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인위적으로 떠나보낸다는 것은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다. 최선의 선택인지 함께 고민하고 또 고민하도록 하자.
나이 든 아이들을 보내는 것은 오랜시간 함께 산 ‘가족’을 떠나보내는 것이다. 난 그들 대부분이 자신이 떠날 때를 안다고 생각한다. 이별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최선을 다해 이별을 준비하자. 아이들은 떠나는 것을 준비하고, 우리는 보낼 준비를 하는, 서로 배려하는 이별이 아름다운 이별이리라. 떠나는 그 순간까지 곁에서 지켜보는 것은 매우 괴롭고 가슴 찢어지지만, 고통을 함께하는 ‘신성한 의리’를 지키는 것이기도 하다.
짱이를 보내고 가족들은 너무 마음 아파하고 자책한다. 짱이네 역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짱구 할아버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보자. 아직 밥 잘 먹으니 1년만 더 살아보자!
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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