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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08 19:57 수정 : 2014.06.13 16:28

[토요판/생명]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나는 지금 강원도 양양에 와 있다. 세탁소 옷걸이에 목을 조인 채 돌아다니는 백구를 구조하기 위해 한 방송프로그램 촬영팀과 온종일 잠복중이다. 키우던 가족이 사정이 생겨 백구를 두고 떠난 뒤, 아이는 예전 살던 집 건너편에서 매일 밥을 얻어먹는단다. 그런 백구를 다른 이웃집에서 옷걸이로 목을 조이고 둔기로 머리를 쳐서 자루에 넣어 갔는데, 며칠 뒤 옷걸이에 조인 채 머리에 피투성이를 하고는 돌아온 것이다. 사람들이 안쓰러워 목에 걸린 옷걸이를 풀어주고 싶어도 백구는 사람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 말로는, 백구를 때린 이웃집은 개가 자기 집 근처만 오면 각목으로 때린다고 한다.

얼마 전 나는 친구가 에스엔에스(SNS)에서 봤다는 충격적인 글을 접했다. 이웃집 강아지가 자신의 딸을 물었다고 아파트 12층에서 그 강아지를 던졌다는 당사자가 직접 썼다는 글이었다. 그 내용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흥분했으나, 2011년에 기사로까지 난 몇년 전 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런 일이 있나 했지만 황당하게도 이 글은 사실이 아니었다. 수소문해서 물어보니 당시 동물보호단체에서 글쓴이와 직접 통화해 확인한 결과, 사건을 일으킨 누리꾼은 여러 동물보호단체로부터 전화를 받으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포털사이트에 ‘내 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글을 올렸다’는 사과문을 게재했다. 관심받고 싶어하는 한 사람이 꾸며낸 이야기였다.

여러 사람이 고생해서 촬영하는 구조 이야기는 많은 사람이 공분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신문 방송에 이슈가 되면서 동물보호법이 개정된 것은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동물 학대와 관련한 글들이 인터넷에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심지어는 동물을 학대하는 잔인한 동영상까지 떠도는 분위기가 걱정된다. 자신이 주목받기 위해 동물 학대를 소재 혹은 도구로 이용하지는 않을까, 학대 장면을 여과 없이 세밀하게 묘사한 글과 동영상이 모방범죄를 부추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 더, 학대 그 자체도 문제지만 그로 인해 우리는 점점 동물 학대에 오히려 둔감해지는 건 아닌가 싶다. 그러다 보면 웬만한 학대에는 동요하지 않는 상태가 되는 건 아닐지 싶어 조금은 애가 탄다. 강도 높은 학대가 미디어를 통해 소개되고, 다음번엔 더 강도 높은 수위의 학대가 나타나야만 방송에 나오게 되는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지는 않을는지.

동물 학대뿐 아니라 어린이 성폭력을 보도하는 기사도 마찬가지라는 생각도 든다. 수면 위로 떠오른 문제의 심각함을 알리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공론화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세세한 상황 설명과 묘사가 꼭 필요한 건 아니다. 유사한 사건들이 연이어 소개되면서 ‘세상에 있을 수도 없는 일’로만 느꼈던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보편화되어 버린 듯한 기분은 나만 느끼는 걸까.

어린이도 동물도 약자다. 그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은 자신보다 약한 존재들을 괴롭히며 쾌감을 느끼는 한없이 ‘찌질한’ 존재다. 약한 존재에게 강하게 군림하려는 행동은 세상에서 가장 못난 일일 테니까. 그리고 백구를 괴롭힌 이웃집 아저씨, 당신은 세상에서 제일 못난 ‘찌질이’입니다. 약한 존재를 괴롭히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찌질이들은 존중도 주목도 받을 가치가 없단 걸 스스로 아시기를.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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