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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22 20:59 수정 : 2014.06.13 16:27

박정윤 수의사

[토요판/생명]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금비는 태어난 지 한달 반밖에 안 된 갈색 푸들이다. 가정집에서 분양받아 데리고 온 지 며칠 안 됐는데, 누런 콧물이 나고 기침이 심해 내원했다. 다행히 전염병은 아니었지만 워낙 어린 나이라 방사선 촬영을 했더니 폐렴이 심각하다. 며칠 사이 병은 심각하게 악화돼 금비는 밥도 먹지 않고 산소케이지 안에 있지 않으면 입을 벌리고 숨 쉬기도 힘들어할 정도다.

최소 일주일 입원, 약물치료는 3주 정도 받아야 할 상황이었다. 데려올 때부터 콧물과 재채기가 있었지만, 약간 감기가 들어서 그렇다며 약을 주길래 약만 먹이면 될 줄 알았다고 가족들은 속상해하셨다. 아이와 며칠을 함께한 정이 있지만 만만치 않은 치료비도 부담되고 저러다 아이가 잘못되면 그 상처도 너무 클 것 같아서 분양받은 곳과 연락해보겠다고 하고는 가족들은 일단 금비를 입원시켰다. 오후에 연락이 온 가족들은 분양받은 곳에서 다시 데리고 오라고 했다며 다음날 퇴원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날, 퇴원한 금비가 몇 시간도 못 되어 다시 병원으로 왔다. 데리고 가서 막상 떼어놓으려고 하니 금비가 앞발로 팔을 꼬옥 잡고 안겨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단다. 입 벌리고 숨 쉬면서도 자기만 쳐다보는 모습에 그냥 되돌아왔단다. 돈은 없지만 치료하겠다고, 치료받다가 죽더라도 가족들이 책임져주고 싶다며 울먹이셨다.

얼마 전 한 보호자가 발바리를 데려왔는데, 파보장염 진단이 내려졌다. 보호자는 발바리를 5만원을 주고 샀는데 60만원이나 되는 치료비를 낼 수는 없지 않겠냐며 따지더니, 나에게 차라리 새로운 강아지를 사는 게 낫다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금비나 발바리처럼 데려온 지 얼마 안 돼 질병을 앓는 경우는 병원에선 흔하게 볼 수 있다. 금비는 운이 좋은 경우다. 예전에는 분양계약서의 내용을 가지고 분양업자랑 싸우며 ‘환불이 안 되네’, ‘교환만 되네’ 하는 얘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참 많이 봤다.

종종 우리 병원에 와서도 분양 문의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병원은 분양도 교배도 하지 않으니 입양을 하시라고 권한다. “어머~ 그래요?” 하며 입양에 호기심을 보이다가도 이것저것 물어보는 질문에 “에고~ 돈 주고 사는 것보다 더 복잡하네” 하며 귀찮아하시는 분들도 있다. 하긴, 요즘은 보험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입시켜준다는 세상인데. 묻고 따지는 게 귀찮으실수도. 하지만 분명 따져야 한다.

며칠 전 교육방송(EBS)에서 버려지는 동물들에 대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들이 내게 던진 질문 중 하나가 “사람들은 왜 동물을 버릴까요?”였다.

사람들은 왜 동물을 버릴까? 너무 쉽게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리라. 쉽게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쉽게 버릴 수 있는 게 아닐까. 쉽게 가질 수 있다는 건, 돈만 있으면 누구나 동물을 살 수 있는 ‘동물상품화’ 시스템이 있다는 뜻이다. 컴퓨터만 켜도 동물을 판매한다는 글들이 수없이 올라와 있고, ‘초소형견 포메라니안 팝니다’ ‘에이(A)급 몰티즈 팝니다’라는 인터넷 공지가 우리에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돈만 주면 초등학생도 동물을 살 수 있는 문화는 분명 잘못됐다. 우리는 한번쯤 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동물을 가족으로 맞는 대부분의 경로는 분양이다. 분양이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엄격한 허가제를 통해 허가를 얻고 교육을 받은 의식이 있는 브리더(동물분양업자)들이 분양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아픈 아이들을 판매하는 일도 없고, 젖 뗀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애를 두달 이상 지난 새끼라고 속여 파는 일도 없을 테니까. 그 선별된 브리더들이 구매자들에게 정말 분양을 받아 잘 키울 준비가 됐는지 검증할 수 있는 간략한 질문지를 작성해 내밀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좋겠다. 예쁘고 귀엽다는 이유로 자신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덥석 ‘구매’했다가 버려지는 동물들만 늘어난다. 최소 15년은 같이 살아야 한다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반려동물 구입을 결정해야 한다.

독일에선 유기견보호소에서 개들이 안락사 당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대부분 독일 사람들은 유기견보호소를 통해 입양신청 후 심사를 거쳐 함께 살 개를 입양하기 때문이다. 소수의 브리더들만 분양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분양이라는 것은 낯설고 어색한 분위기다.

금비는 생각보다 빨리 호전돼 엿새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 약만 받아간 ‘5만원’짜리 발바리는 어떻게 됐을까. 부디 그 약을 먹고 기적처럼 건강이 좋아졌기를…. 경제관념 투철한(?) 그 보호자가 마음이 바뀌어 다른 곳에서라도 발바리를 치료해주기를 바란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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