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4.05 20:38
수정 : 2014.06.13 16:27
|
박정윤 수의사
|
[토요판/생명]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14살 몰티즈 ‘가연이’는 ‘간헐적 단식’을 하는 개였다. 가족들은 늘 먹는 걸로 속을 썩이는 가연이가 나이가 드니까 자기가 알아서 음식을 조절한다고 생각했다. 좀 많이 먹었다 싶으면 다음날은 음식을 입에 안 대고, 하루 종일 굶고 난 뒤 다시 밥을 먹는다는 것. 요즘 유행하는 ‘간헐적 단식’을 하는 셈이다. 건강을 생각하는 개들도 자기 몸을 생각해서 조절하나 보다 하며 웃고 넘긴 가연이의 간헐적 단식. 가연이는 종합건강검진 결과 ‘만성 담낭염’이었다. 담낭 내 슬러지(찌꺼기)가 많고 염증이 있는 상태인데다 담낭염으로 인해 만성 췌장염도 함께 와서 상당 기간 치료를 받게 되었다.
12살 슈나우저 ‘이하나’는 최근 들어 간헐적인 통증을 보이는 것 같다며 가족들이 데리고 찾아왔다. 잘 놀다가도 가끔 ‘끄응’ 하며 잘 움직이지 않고 온종일 웅크리고 있다고 했다. 혈액검사와 방사선 검사에서도 큰 문제가 없고 촉진했을 때도 큰 통증 반응이 없었다. 미약하게 디스크의 문제인가 싶었는데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담낭결석이 문제였던 것. 담낭결석으로 인해 담낭염이 있는 상태였다.
갑자기 밥을 먹지 않아 내원한 12살 시추 ‘딸구’도 비슷한 경우였다. 다른 병원에서 혈액검사를 하고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해서 지켜봤지만, 잘 움직이려 하지 않고 그렇게 좋아하던 밥을 먹지 않은 지 일주일이 되어 간다고 했다. 딸구 역시 검사 결과 담낭염을 동반한 담낭결석이었다. 딸구와 하나는 모두 담낭 제거 수술을 하고 회복됐다.
현대인들은 고지혈증과 콜레스테롤 수치 상승으로 담낭 관련 문제가 많다. 동물들도 비슷하다. 고령화와 비만 등으로 동물들에게서도 예전보다 담낭질환의 발병률이 높아지고 있다.
흔히 쓸개로 불리는 담낭은 간 밑에 붙어 있는 장기로, 간에서 생산되는 담즙(쓸개즙)을 저장했다가 담관(쓸갯길)을 통해 십이지장으로 배출한다. 이때 담낭으로 들어온 담즙은 보통 6~8배로 농축되는데 특히 기름진 음식을 섭취하면 호르몬의 작용으로 담낭 근육이 수축되고 담낭 괄약근이 이완되면서 농축된 담즙이 일시에 장으로 배출돼 음식의 분해를 돕는다.
담낭결석은 비만 등으로 늘어난 콜레스테롤이 서로 엉겨 붙으면서 생기거나, 담즙의 정체나 감염과 관련된 염증 반응 때문에 빌리루빈과 탄산칼슘·인산칼슘 등이 잘 녹지 않아 생긴다. 이렇게 만들어진 결석이 담즙 배설을 막으면 염증이 생기고, 계속 진행되면 결석이 담관을 막거나 점액낭종(mucocele)이 굳어져 담낭파열을 일으킬 수 있다.
만성 담낭염에 걸린 동물들은 심한 통증을 호소하기도 하지만 일부는 뻐근한 복부 통증이나 복부 팽만 같은 상복부의 불쾌감 정도만 느끼게 된다. 개들은 사람처럼 불편함이나 통증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래서 가연이 같은 ‘간헐적 단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담낭염의 경우 조기에만 발견하면 내과적 치료로 경과를 지켜보며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
담낭질환을 방치하다가 점액낭종이나 담낭결석이 담관폐색을 일으켜 급성 담낭파열로 문제가 심각해지는 경우도 있으니, 나이가 든 반려동물은 비슷한 증상을 보일 때 복부 초음파로 간과 담낭을 점검하는 것을 잊지 말자.
담낭 제거 수술을 마친 뒤 딸구는 우리가 알고 있던 딸구가 아니었다. 수술 전 아주 얌전하고 순한 딸구였는데 수술이 끝나니 딸구는 무척 목청이 크고 말이 많았다. 아파서 얌전했을 뿐이었다. 하하하. 또한 치료 후 가연이는 더이상 ‘1일1식’ 같은 단식을 하지 않았다. 1일4식 하는 가연이만 있을 뿐.
박정윤 수의사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