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4.26 20:40
수정 : 2014.06.1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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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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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생명]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발바리 ‘행복이’는 가족과 함께 산 지 1년여가 됐다. 행복이의 추정 나이는 7~8살. 입양 당시 이름은 ‘한강이’였다.
지난해 이맘때쯤 서울 한강시민공원에 놀러 간 가족은 거지꼴을 한 강아지가 여기저기 동냥하듯 먹을 것을 얻어먹는 걸 보게 됐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돗자리에서 던져주는 걸 받아먹고 어떤 데에선 쫓겨나기도 하면서 여기저기 배회했다. 놀러 나온 다른 강아지들 있는 자리에서도 기웃거렸는데, 이를 드러내면서 짖고 쫓아내는 다른 강아지들 때문에 사람들 근처만 배회하더란다. 결국 그 ‘거지 강아지’는 이 가족들의 돗자리까지 오게 되었다.
측은한 마음에 음식을 나눠주자 얻어먹고 다른 데 갈 줄 알았는데, 강아지는 웬일인지 갈 생각을 안 하고 잔디밭에 계속 앉아 있었다. 돗자리에 앉으라고 바닥을 두드리자 슬쩍 들어와 앉았다. 돗자리 귀퉁이에 은근슬쩍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한 강아지가 안쓰러워 가족들은 깨우지 못했다. 날이 저물기 시작해 집에 돌아올 준비를 하는데도 거지 강아지는 가족들 곁을 떠나지 않고 서성댔다. 가족들은 “안녕~ 잘있어”라고 인사하고는 돌아서는데 멍하게 쳐다보는 그 눈을 피할 수가 없어 집으로 데려와 ‘한강’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바깥생활로 인해 심장사상충과 진드기가 있었지만, 더 큰 문제는 배에 있는 커다란 혹이었다. 수술 후 건강해진 한강이에게 한참 뒤 발견한 놀라운 사실은 자신들이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손!” 하면 손을 내준다는 것이었다. 원래 주인이 가르쳐준 것 같은데, 그럼 한강이가 가족이 없었던 게 아니라 나이 들어 배에 혹이 생겨 한강에 버려진 게 아닐까 하고 속상해하셨다. 그 후 한강이는 행복이로 개명됐고 과거 상처를 떠올릴까봐 한강은 안 갈 거라는 가족들과 지금 행복한 여생을 보낸다.
얼마 전 강원도 양양에서 세탁소 옷걸이에 목이 조여 피부가 썩어들어간 채 아홉달 동안 사람을 피해 다니던 백구를 겨우 구조해 수술을 했다. 그런데 목을 파고들어간 옷걸이보다도 더 가슴아팠던 건 미간 위쪽 한가운데를 둔기로 맞아 머리뼈가 함몰된 채 이미 아물어버린 이마였다. 분명 잡아먹기 위해 죽이려는 의도로 둔기로 내리친 상처였다.
그렇게 큰 상처를 가지고 사람을 피해 다닌 백구는 예상보다 너무나 순했다. 사람을 잘 따르는 아이였으니 옷걸이로 목을 옭아맬 수 있었을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원래 주인이 있었는데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가족들이 갑작스레 이사 가면서 백구만 남았다고 했다. 혼자 남은 백구는 지난해 늦여름 변을 당했고 그 뒤로 사람들을 피해 다녔지만 가족과 살던 동네를 떠나진 못했다. 여섯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마친 백구는 깨어나자마자 울었다. 고생했다고 쓰다듬어 주다가 손을 떼니 다시 끙끙거리는 백구를 보며 ‘얼마나 이런 손길을 기다렸을까’ 생각하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버려지고, 버려진 곳에서 가족이 행여 데리러 오지 않을까 기다리는 아이들이 많다. 물론 그런 아이들 모두를 집으로 데려올 수는 없다. 이웃의 작은 손길이 필요할 수 있다. 온전히 책임지지는 못하더라도 쉴 수 있는 한 귀퉁이 자리나 하루 한 끼의 작은 먹을거리라도 내준다면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5월이다. 따뜻한 봄볕이 좋아 동네에 산책도 다니고, 공원으로 나들이도 많이 가게 될 것이다. 길에 사는 고양이들도 많이 마주칠 것이고, 새끼를 낳는 어미 고양이도 많을 것이다. 한강에서 뛰어노는 행복한 강아지들 말고도 가족에게 버림받고 떠돌아다니는 제2의 한강이들을 종종 마주치게 될지도 모른다. 지저분한 외양으로 내 강아지 주변에 혹은 내 가족 주변에 서성거리는 개들을 발견하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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