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05 19:50
수정 : 2014.06.1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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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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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생명]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갑자기 우리집 ‘찡보’가 쓰러졌다며 어머니가 찡보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왔다. 지난해 18살 야토가 떠나고 언젠가는 이별할 날이 올 거라 생각하면서도 ‘우리 찡보는 스무살까지는 살 것 같다’고 말해온 나였다. 덩치가 있는 시추였는데 조금씩 살이 빠졌다. 밥을 워낙 잘 먹어서 건강하리라 자신했다. 혈압약과 호르몬약을 먹고 있지만 얼마 전에 검사도 했고 큰 문제가 없었다.
찡보는 간 수치가 매우 높고 간부전이 의심되는 상태였다. 늘 잘 먹던 아이가 며칠 사이 식욕이 줄었는데, 바로 병원에 데려오지 않고 미룬 것이 후회됐다.
병원에 입원한 찡보는 나에게 다른 모습이었다. 기운이 없어 한쪽으로만 누워 있는 찡보를 반대쪽으로 눕혀주려고 몸을 돌려주니, 반대쪽 털이 눌린데다 입 주위에 약 찌꺼기가 묻어 있어서 지저분한 모습이었다. 우리 찡보가 이런 모습이었나…. 마치 오래 방치된 강아지 같은 찡보를 다시 빗겨주며 문득 그동안 진료를 왔던 아이들이 떠올랐다. 병원에 초진을 온 나이 든 아이들의 모습과 겹쳐졌다.
마른 몸에 지저분한 모습, 누가 보아도 예쁘지 않은 그런 모습을 한 나이 든 아이들. 우리 찡보도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가끔 바싹 마르고 털도 엉킨 채로 나이 든 강아지가 와서 심각한 질환으로 진단이 나오면 ‘이렇게 될 때까지 보호자는 뭘 한 거지’ 하며 마음속으로 나무란 적이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기운이 없어 보여서 ‘내일도 안 좋으면 병원에 가야지’ 하면서 살펴보다 이튿날 밥을 잘 먹으면 괜찮겠다 싶어 뒤로 미룬 시간들이 있었다. 내가 수의사가 아니라면 분명 우리 찡보도 병원에 갔을 때 방치하다시피 키워진 아이로 보였을 수 있었을 것이다. 혹시 나도 그 긴 세월을 함께한 그들을 보지 못하고 순간만을 보고 판단한 적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눈곱이 달려 있고 얼굴은 꼬질꼬질하고 털이 수북하게 엉켜 있다고 함께 지낸 긴 시간들을 무시한 적은 없었던가.
며칠 동안 치료를 받았는데도 찡보는 차도가 없었다. 한번도 소리내지 않던 점잖은 찡보가 어디가 아픈지 ‘끄응’ 하며 소리를 낼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다. 아프지 않고 떠났으면 하면서도 조금만 이렇게라도 함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복잡하게 교차했다.
얼마 전 자궁축농증 수술을 하려고 내원한 다롱이네가 생각났다. 몇 달 전부터 배가 불러와서 다른 병원에서 자궁축농증 진단을 받았다는 다롱이는 검사 결과 간의 모든 부분에 종양이 퍼져 있었다. 췌장으로까지 전이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다롱이는 덜컥 자궁축농증까지 겹친 상태였다. 간 종양이 심각해서 다롱이가 살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한 달에서 석 달 정도. 처음 내원한 날과 달리 며칠 사이 컨디션이 안 좋아지는 다롱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가족들 사이에 의견은 나뉘었다. 수술해도 얼마 못 살 수 있는데 하지 말자는 의견과 지금 당장 고통을 줄여줄 수 있으니 수술하자는 의견.
동물과 함께 사는 동안 아무리 최고의 관리를 해준다고 해도 이별을 막을 수는 없다. 이별이 예고되는 힘든 시간에서 선택의 순간이 닥친다. 그때 보호자들은 나에게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라고 물어본다. 무엇이 정답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후회는 남을 것이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됐을 때 ‘잘 죽게’ 해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남은 시간을 ‘잘 살게’ 해주는 것이 가족이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안 되는 시간이라도 함께하면서 그 시간 동안 힘들지 않게 도와주는 것이 선택을 하는 데에 기준이 된다면, 그나마 후회가 적은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찡보는 병원에서 돌아와 하루 반나절 우리 곁에서 지내다가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힘들어하는 순간에 나는 찡보를 편안히 보내주었다. “나의 20대와 30대를 함께 보낸 가장 가까운 가족인 찡보. 오랜 시간 곁에 있어줘서 고마웠어 찡보야.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라는 인사와 함께.
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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