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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8.02 19:52 수정 : 2014.06.13 16:15

박정윤 수의사

[토요판/생명]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올해 가장 화가 나는 하루로 기억될 날이다. 지난 토요일 오전에 어린 고양이가 전신에 화상을 입은 채 급히 내원했다. 하남시에 사는 요미라는 이름의 길고양이였다. 며칠 전까지 건강했는데 하루 사이 불에 그을려 전신에 화상을 입은 채 꼼짝 못하는 것을 보고 동네에서 밥을 주시던 분이 급히 데려왔다. 요미의 상태는 처참했다.

온몸의 피부가 불에 그을려 딱딱해져 있었다. 안면 부위도 화상을 입어 눈을 감지 못하고 입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살아 있는 것이 용할 정도였다. 누가 일부러 휘발유나 시너 같은 것을 뿌리고 불을 붙였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산소 처치를 받은 뒤에는 다행히 호흡도 안정되었고 다른 내부 장기에도 문제가 없었다. 몸통 쪽은 화상으로 딱딱해진 피부를 분리한 뒤 건강한 피부를 당겨와서 봉합하는 수술을 하기로 했다. 얼굴, 입, 귀 쪽은 끌어올 피부가 없었다. 괴사한 피부는 벗겨내고 피부가 없는 상태로 매일매일 소독과 드레싱으로 피부재생을 유도하는 치료를 받기로 했다. 최소 몇 달의 시간을 화상치료와 피부재생을 위한 드레싱을 하며 입원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긴 치료기간을 잘 버텨줄 수 있을까도 걱정되지만 아이가 받았을 정신적인 충격도 얼마나 클까 염려되었다.

요미는 응급처치를 하는 내내 발톱 한번 세우지도, 사나운 비명 한번 지르지도 않았다. 응급수술 후 마취가 깬 아이는 우리가 쓰다듬어주자 얼굴을 손에 비비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이 바보야, 니가 이렇게 착하니까 당하지!” 하고 요미에게 버럭 화를 내며 울기도 했다.

길고양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지만, 아직도 아이들은 도둑고양이 취급을 받으며 살고 있다. 쓰레기봉투를 찢어서 동네 미관을 해친다고 고양이 밥을 주는 사람들과 싸우고, 요사스런 고양이가 내 집 앞에 있는 게 싫다며 구청 직원에게 신고해서 잡아가라고 쫓아내고, 자기 화단을 해친다고 쥐약 먹여 죽이겠다고 날뛰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요미 말고도 길고양이들이 화상을 입은 사건은 종종 있었다. 자신의 닭을 잡아먹었다는 이유로 통에 가두고 휘발유를 뿌려 불을 붙이는 것을 본 동네 주민이 불을 끄고 병원에 갔으나 결국 고양이가 죽은 경우도 있었다.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은 온전히 사람의 것만은 아니다. 내 집 앞 텃밭이어도 다른 동물들에게는 자신의 영역일 수 있다. 우리는 따뜻한 집 안에서 살고 편안하게 식사를 하는데,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작은 공간을 다른 존재와 나누어 쓰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일까. 길고양이들이 쓰레기를 뒤지는 것은 배가 고프기 때문일 뿐이다. 그 동네에 길고양이 밥을 주는 ‘캣맘’이 있다면 굳이 쓰레기를 뒤지지 않는다. 고양이는 그런 동물이다.

배려심이 없다면 동물학대는 계속될 것이다. 그런 행동을 하는 당사자도 자신이 동물을 학대한다고 생각 못하고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하겠지만. 내가 사는 공간에 다른 존재가 함께 거주한다고 해서 그 생명을 함부로 죽이거나 해칠 수 있는 권리는 사람에게 없다. 길고양이건 유기견이건 어떤 이유에서라도 함부로 해칠 수 없다. 약간은 불편할 수 있더라도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하며 살아가는 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재미이고 예의가 아닐까. 내가 아닌 다른 존재와 더불어 살아갈 마음이 없다면 차라리 콘크리트로 사방을 막고 혼자 사는 것이 어떨까.

길고양이들아, 착한 마음을 버리고 부디 사나워져라. 절대 먼저 다가가지 말고 사람도 믿지 말고 사나워져라. 그래야 너희들이 살아남겠다.

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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