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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8.16 19:29 수정 : 2014.06.13 16:14

박정윤 수의사

[토요판/생명]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얼마 전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신직업 발굴·육성 추진 방안’을 보면 100여개 신직업 중에 ‘수의테크니션’이 포함되어 있다. 국가공인자격증을 도입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겠다는 취지다. 선진국에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는 직업이 대거 포함됐는데, 수의테크니션도 그 중 하나였다.

수의테크니션(VT·Veterinary Technician)은 동물병원이나 수의 임상과 관련된 기관에서 진료 보조 및 환자 관리, 각종 실험실 검사, 임상병리 검사 등의 업무를 하는 이들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하나의 전문직으로 자리잡은 직업군으로 미국에서는 VT로, 영국에서는 VN(Veterinary Nurse, 수의간호사)으로, 일본에서는 AHT(Animal Health Technician, 동물건강 테크니션)로 불리고 있다.

사실 생소한 직업은 아니다. 동물병원에서 일하는 수의간호사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수의사가 하는 일을 다 할 수는 없지만 아픈 동물을 치료해주고 돌보고 싶은 사람들이 늘면서 2000년대 초중반 동물 관련 학과나 수의테크니션 학원들이 많이 늘어났다.

그러나 그때 수의테크니션이 된 사람들 중 계속 일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저 병원에서 귀찮고 잡다한 일이나 해주는 직업으로 간주된 탓이다. 근무연수가 늘어도 단순 업무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직업에 회의를 느끼기 쉬웠다. 일을 계속하는 기간은 평균 5년 미만이다. 취업한다 해도 전문적인 직종으로 자리잡기엔 사회적인 인식이나 처우가 너무나 미흡했다.

요즘 병원은 그 규모가 커지면서 수의테크니션도 수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을 짓고 주사처치를 하고 채혈이나 혈관 카테터를 잡는 정도의 기본 처치를 하고 있다. 이런 근무범위에 대해서 수의사들끼리 논란이 있고 수의테크니션이란 호칭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아직까지 수의사들 중에도 수의테크니션은 단순업무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논란 속에서 수의테크니션은 또다시 신직종으로 대두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수의테크니션은 ‘동물간호복지사’라는 호칭을 쓴다. ‘수의간호사’라는 호칭을 공식화하려 했으나 ‘간호사’라는 호칭을 쓰지 말라고 항의를 받아 동물간호복지사로 정정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수의‘간호사’ 혹은 동물‘간호사’라는 말을 더 많이 쓰고 있다.

‘간호’라는 말의 의미는 꼭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픈 동물을 돌보는 의료인이 꼭 수의사만은 아니다. 수의사도 수의테크니션도 모두 의료인이다.

나는 우리 병원에 있는 6명의 수의테크니션이 떠올랐다. 나와 7년을 함께 일한 경력 9년의 ‘이쌤’을 포함한 ‘하나쌤’ ‘오쌤’ ‘황쌤’ ‘기쌤’ ‘유쌤’. 나는 우리 육공주들을 ‘간호사’로 부른다. 이들은 고양이에 할퀴고 개에 물리고 수의사들에게, 보호자들에게 치이면서 하루 종일 아래위층을 뛰어다닌다. 소아과 간호사들처럼 꼼꼼하고 세심하게 말 못하는 동물들의 불편함이나 상태를 살피고 입원 중에도 수의사가 미처 못 챙기는 부분까지 챙긴다. 환자의 병력과 성격, 습관까지 모두 꿰고 있는 능력자들이다. 밤새 잠 못 자고 당직을 하고도 입원한 아이들 걱정에 퇴근하지 않고 서성대는 우리 육공주들. 그들이 하는 일은 ‘간호’가 분명하다. 그리고 다른 병원에도 육공주는 많을 것이다.

수의간호사든 간호복지사든 호칭이 뭐가 되든 신직업으로 육성하는 데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가공인자격증보다는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근본적으로 동물진료가 별것이 아니라는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반려동물에 대한 자가진료, 분양업소의 불법진료가 근절되어 동물병원이 전문적으로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 ‘신직업 육성’의 대표 직업으로 수의테크니션은 단연 일순위가 되지 않을까. 또한 함께 일하는 수의사가 먼저 수의테크니션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동료로 받아들인다면 그들의 미래는 좀더 밝아질 것이다. 그러면 수의사의 미래도 더불어 밝아질 테니까.

나는 우리 병원 육공주들이 자랑스럽다. 당신들 없으면 병원은 쑥대밭일 거야. 늘 고맙고 사랑하오.

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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