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8.30 19:50
수정 : 2014.06.13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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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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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생명]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9살 시추 예삐는 요즘 눈 때문에 고민이 많다. 예삐는 눈이 정말 큰 아이였다. 영화 <슈렉>에 나오는 장화 신은 고양이 같은 눈으로 자주 깜박거리곤 했다. 예삐는 시추 특유의 코주름 피부염이 심해서 눌린 코밑에서 냄새가 많이 나지만 가족들은 늘 휴지와 물티슈로 닦아준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냄새가 심해서 물티슈로 닦아 주었는데 눈을 다쳤는지 한쪽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채 눈곱이 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기도 했단다. 그러나 눈 상처가 나은 뒤에도 계속 눈곱이 낀다며 내원했다. 예삐가 발로 눈을 긁거나 이불에 눈을 비벼서 눈에 또 상처가 날까봐 걱정이라는 예삐의 가족들. 특히 예삐의 어머니는 자신이 코밑을 닦아주다가 눈을 찔러서 상처가 난 것 같다고 자책했다.
검사 결과 예삐는 미약한 각막상처를 동반한 건성각결막염(KCS: keratoconjunctivitis sicca), 쉽게 말해 안구건조증이었다. 눈물의 생산이 줄어들거나 유실되어 눈물의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각막과 결막에 염증이 생기고 충혈이 동반되어 눈곱이 생기는 질환이다.
눈물은 뮤신(mucin, 점막 분비물질)과 지질, 물로 구성되어 있다. 만성적인 자극으로 눈을 보호하는 눈물층이 손상되면 구성성분 중 물의 양이 줄어들어 끈적한 성분들만 남게 된다. 이러면 눈곱이 자주 끼고 눈이 가렵고 뻑뻑해진다. 사람처럼 눈이 뻑뻑하다고 불편함을 호소할 수 없는 아이들은, 눈을 발로 자주 긁거나 바닥이나 이불에 얼굴을 비비게 된다. 그로 인해 각막에 상처가 생길 수 있다.
특히 시추와 페키니즈처럼 눈이 큰 품종은 눈 관리가 중요하다. 얼굴 털이 자라면서 눈을 자주 찌르기 때문에 눈이 아픈 아이들이 많다. 만성 자극이 쌓여 나이가 든 뒤 안구건조증이 오기도 한다. 또 만성 피부질환이나 귀질환이 있는 아이들이나 아토피 때문에 고생하는 아이들도 안구건조증을 동반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건성각결막염이 심하게 진행되면 겉으로 보기에도 눈이 메마르고 각막에 색소가 침착되어 유리에 검은색 매직펜으로 칠한 것처럼 흰자위까지도 색소에 뒤덮인다. ‘까만 눈’이 되고 눈곱이 덕지덕지 얼룩지게 되는 것이다. 안구에 이상이 없어도 앞을 볼 수 없다. 하지만 초기에 발견하면 적절한 약물 처방으로 눈물의 생성을 촉진하여 치료하고 효과를 볼 수 있다. 간단한 눈물양 검사만으로 알 수 있기 때문에 진단이 어려운 질병은 아니다.
예삐의 가장 큰 발병 원인은 눈에 있는 첩모(속눈썹)와 코주름의 털들이었다. 아이라인 안쪽에 난 첩모들이 눈을 계속 자극하고 눈 밑에 접힌 피부에 있는 털이 눈을 계속 찔렀던 것. 심한 자극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눈이 시달리다 보니 눈물층이 손상되어 안구건조증이 생긴 것이다. 가족들이 좋아하는 예삐의 최대 매력인 커다란 눈을 깜박거리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아마 스스로 건조한 눈을 보호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예삐는 눈에 자극을 주는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코주름 성형수술과 내안각 성형수술을 받게 되었다. 사람과 달리 강아지의 성형은 미용 목적이 아니다. 외과수술이다. 코주름 성형수술은 시추나 페키니즈 품종이 주로 받는다. 눈 밑 코주름에 있는 털이 눈을 찌르지 않도록, 심하게 접힌 눈 밑 피부를 잘라내는 작업이다.
내안각 성형은 쉽게 설명하면 ‘앞트임’ 수술의 반대 개념이다. 내안각, 즉 눈의 앞꼬리 쪽을 절제하여 봉합하는 수술을 해주면서 눈 깊숙이 박혀 있는 첩모를 제거하고 교정해준다. 사람은 눈을 크게 만든다고 미용 목적의 ‘앞트임’ 성형수술을 하지만, 내안각 성형수술을 한 강아지들은 이와 반대라서 처음에는 눈의 크기가 줄어들고 눈 사이도 멀어 보인다. 가족들은 예삐의 커다란 눈을 포기하는 게 쉽지 않아 고민했지만 반복되는 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술을 선택했다.
예삐는 수술을 받고 안약치료를 병행하면서 눈곱이 끼고 눈을 바닥에 비비는 증상이 좋아졌다. 눈은 조금 작아졌지만 수술 뒤 몇 주가 지난 뒤에는 자연스럽게 보였다. 수술 전에 이쁜 예삐의 얼굴이 달라지게 된다며 크게 상심하던 가족들은 오히려 주름제거 수술 뒤 예삐 얼굴이 더 어려 보이는 것 같다며 좋아했다. 개들도 사람도 성형하니 예뻐진다고, ‘커다란 눈보다는 동안이 최고’라는 어록을 남기며 밝은 얼굴로 집에 돌아갔다.
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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