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0.04 20:03
수정 : 2014.06.13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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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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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생명]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피부가 안 좋은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던 8살 시추 은별이의 상태는 심각했다. 온몸이 각질로 뒤덮여 있는데다 벌겋게 부어 있는 발은 털이 거의 빠져 있었다. 얼굴 주변과 귀도 마찬가지였다. 은별이 가족은 은별이가 몸을 긁고 털면 각질이 쏟아져서 집에서 빗자루로 각질을 쓸어담아야 할 정도라고 했다. 어느 날인가부터 알레르기 피부라고 해서 치료를 받았으나 잘 낫지 않았다. 알레르기 처방 사료 외엔 간식도 주지 않았고, 2~3일 간격으로 약욕(약물목욕)을 해준 지 3년이었다. 이제는 포기한 심정으로 지내고 있다는 가족의 모습은 지쳐 보였다. 게다가 가족 한명이 출산을 앞둔 상태인데 주위에서 은별이의 피부를 가지고 말이 많아서 어찌해야 할지 가족은 고민하고 있었다.
동물병원에서 피부치료는 매우 흔한 일이다. ‘피부병’이라고 진단을 받고, 혹은 알레르기 피부, 아토피 피부라고 해서 간식을 중단하고 사료만 먹인다. 그러나 그중에서 알러지 검사를 제대로 받은 경우는 10% 미만이다.
무분별한 외용제 사용이 문제다. ‘약용샴푸’에 대한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피부가 안 좋다는 진단 뒤 집에서 인터넷으로 구매하거나 마트 혹은 병원에서 약용샴푸를 사다가 장기간 약욕을 시키는 가족이 많다. 어쩌면 그것이 아이의 피부질환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봐야 한다.
약용샴푸는 한가지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곰팡이성 피부질환, 세균성 피부질환, 알레르기성 피부질환 여부에 따라 사용하는 약용샴푸도 다르다. 은별이에게 각질이 심각하게 생긴 주된 원인은 약용샴푸의 오·남용이었다. 대부분의 약용샴푸에는 클로르헥시딘이란 성분이 들어 있다. 클로르헥시딘은 그람양성균에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는 것 이외에 그람음성균과 진균에도 작용한다. 진균(곰팡이균) 치료에 대한 효과는 다소 약하다. 이 때문에 곰팡이성 피부질환이라면 항진균제 성분이 있는 약용샴푸를 함께 사용해야 한다. 아토피성 피부염으로 인한 피부질환이라면 처방 샴푸는 또 달라진다.
대부분의 약용샴푸는 살균과 소독 작용을 하면서 모공의 때를 깨끗이 제거한다. 피부층은 페이스트리처럼 여러겹으로 되어 있는데 끊임없이 탈락과 재생을 반복한다. 건강하지 않은 아이는 피부의 재생되는 속도가 더디기 때문에 세정 작용이 강한 약용샴푸만을 쓰다 보면 피부 탈락만 촉진되어 각질은 더욱 심각해진다. 피부가 재생되기도 전에 탈락만 일어나다 보니 각질이 늘어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당연히 피부는 점점 더 예민해지고 벌겋게 될 수밖에 없다. 사람도 탈모용 샴푸나 비듬용 샴푸를 매일 쓰지 않고 일반 샴푸와 번갈아 사용하거나, 일주일에 두세번 사용하도록 권장하지 않나. 어떤 것이든 약용샴푸는 단기간 혹은 증상에 따라 간헐적인 사용이 원칙이고, 약용샴푸 사용과 동시에 보습에 대한 치료도 병행되어야 한다.
정확한 진단 없이 혹은 과거의 피부병력만으로 약용샴푸를 구매해서 사용해서도 안 된다. 현재의 피부질환 원인이 무엇인지 진단을 받아야 한다. 특히 각질과 흔히 동반되는 가려움증과 냄새가 나는 지루성 각질은 단순한 외용제로만 치료되지 않는 질환인 경우가 많으니 검사 뒤 내복약과 함께 최소 두달 이상 장기간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샴푸 사용을 중단한 은별이 가족은 은별이의 각질이 줄어들어 신기하다고 했다. 잘해준다고 열심히 약용샴푸로 씻겼는데 더 피부가 망가진 거란 사실을 미안해했다. 은별이는 약해진 피부의 2차감염으로 세균과 곰팡이가 복합적으로 감염되어 있었다. 일차적으로 약물치료를 하면서 상태를 호전시킨 뒤 정말 음식알레르기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알레르기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 은별이가 먹으면 안 된다는 음식보다는 진드기와 ‘말라세지아’라는 효모균에 알레르기 반응이 높았고, 그래서 반복되는 곰팡이 감염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갑상샘기능저하증 진단도 함께 나와 피부 치료와 호르몬 치료를 병행하게 되었다.
3년간 사용하던 약용샴푸 대신 보습이 강화된 약용샴푸로 대체하고 보습막을 만들어주는 외용제 처방을 시작했다. 미친 듯이 물어뜯는 발가락 치료를 위해 24시간 넥칼라를 착용하여 핥지 못하게 했다. 관리 시작 한달쯤 뒤 은별이는 제법 털도 보송보송해지고 진동하던 냄새도 좋아졌다.
알레르기 원인으로 곰팡이균이 있다 보니 주위 환경을 신경써서 습기나 진드기 등을 관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병의 원인을 알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며 행복해했다.
세상에 그냥 ‘피부병’, ‘귓병’은 없다. 원인이 무엇인지에 따라 치료 방법도 다르다. 종종 피부병은 치료가 아니라 관리를 해야 하는 질환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아토피를 제외한 대부분의 질환은 완치가 된다. 이젠 그냥 “피부병이 심하다, 귓병이 심하다”로 포기하지 말고 정확한 검사를 해보자. 부디 피부가 안 좋은 많은 아이들이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함께 사는데 서로가 불편하지 않도록 치료를 받고 그 이후에 관리하기로 약속하자.
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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