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0.18 19:42
수정 : 2014.06.13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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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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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생명]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몇년 전에 집 밖에 살고 있는 진돗개의 밥을 챙겨주던 어느 보호자가 고민을 해왔다. 진돗개는 동네에 살던 누군가가 버리고 간 아이였다. 마음이 쓰였던 보호자는 공동주택이라 집 안으로 진돗개를 데려가지는 못하고 5년이 넘도록 동네 사람들에게 눈치를 보아가며 공동주택 입구에 늘 잠자리를 봐주고 밥과 사상충 약을 챙겨줘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이가 들어 눈도 어둡고 귀도 잘 안 들려 움직임이 둔해진 진돗개를 만만하게 본 길고양이 가족들이 개의 자리를 꿰차고 앉아 진돗개가 자꾸 사라져서 고민이라는 것이다. 보호자는 고양이들에게 먹을 것과 자리를 뺏겨 밥도 못 먹고 진돗개가 힘들어한다며 그 고양이들을 내쫓을 방법이 없냐고 물었다. 나로서는 “사실 고양이 입장에서도 생존의 문제일 테니 그저 밥을 넉넉하게 주시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우리 병원 앞에는 작년부터 ‘깜순이’와 깜순이의 아들 ‘비지’(유난히 짧은 다리로 맨날 바쁘게 다녀서 비지(busy)라고 이름 붙였다)를 주축으로 길고양이 몇마리가 밥을 먹으러 온다. 그중 비지는 엄마에게서 독립해서 병원 앞에 자리를 잡았다. 맨날 여자친구를 바꿔가며 함께 밥을 먹으러 오는 바람둥이 고양이다.(중성화는 했다.) 바람둥이 비지 덕분일까. 병원으로 밥을 먹으러 오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그중에는 엄마 없이 혼자 다니는 어린 고양이들도 있다.
병원 앞 테라스에 내어준 나무집과 종이집에 아무도 들락거리지 않다가 얼마 전부터 어린 고양이들이 잠을 청하고 쉬기 시작했다. 그런데 며칠 전 큰 사고가 났다. 커다란 리트리버 개 두마리가 종이집에서 자고 있던 아기고양이를 공격해서 아기고양이가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고 상황을 몰랐던 우리는 당황했다. 리트리버의 주인도 우리 개가 원래 고양이를 보면 무는 습성이 있다고 그냥 운이 나쁜 고양이라 안됐다고 생각하실 뿐, 그 자리가 원래 고양이들의 자리라고 생각지는 못했다. 병원 식구들은 왜 보호자가 자기 개를 좀더 말리지 못했는지 속상한 마음이었지만, 리트리버도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니 대놓고 싸울 수도 없었다.
한술 더 떠 병원 옆 주차장에서 비지의 여자친구 중 하나였던 아기고양이가 차에 치였다. 고양이를 친 사람은 길에 사는 고양이라고 별말 없이 그냥 가버렸다며 주차장 관리하는 아줌마가 다친 고양이를 데려오셨다. 석달도 채 안 된 아이였는데, 차에 치인 충격으로 배 밖으로 탈장이 되었다. 응급수술은 했지만 누구 하나 그 아이의 안부를 묻는 이는 없었다.
사실 이런 경우는 드문 일이 아니다. 특히 진돗개나 리트리버 등 대형견이 많은 동네라 길에서 살고 있는 고양이들의 수난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큰 개들의 공격은 둘째고 동물을 키우고 있는 사람들에게조차도 길고양이들은 배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동네에서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캣맘들과 싸우는 주민들 중에는 강아지를 키우는 분들도 많다. 내 집 앞에 혹은 내 집 마당에서 고양이가 돌아다니는 게 싫다는 집 마당에서는 강아지 짖는 소리가 난다니. 이 부분은 정말 충격이었다. 왜 고양이들에게 사람들은 더 야박할까.
예전에 동네 할머니는 고양이가 영물이라 앙갚음을 한다고 무섭다고 했고, 나의 지인 중 한명도 고양이 눈이 무서워서 싫다고 했다. 공포영화나 <전설의 고향>을 보면 항상 고양이가 나온다. 고양이는 그 덕에 하늘에서 떨어져도 살아남고 밥 안 먹어도 살 수 있는 불멸의 사악함을 지닌 듯 오해받는다. 고양이는 개보다는 사람과 조금 덜 친하고 다른 아이일 뿐이다. 사람보다 조금 더 감각적으로 뛰어날 뿐이고, 좀더 유연할 뿐이다. 절대 먼저 공격하지 않고 추위도 많이 타고 겁도 많은 연약한 아이다.
길고양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전에 밖에 사는 아이들은 거의 ‘도둑고양이’라 불렸다. 마치 도둑고양이라는 품종이 있는 것처럼. 도둑고양이는 없다. 먹을 것이 없다 보니 도둑이 된 건 아닐까.
동물을 키우는 사람만이라도 나의 아이 말고 다른 동물에게도 배려와 관심을 가져주면 어떨까. 내가 있는 곳이 바깥에 사는 고양이의 안식처일 수 있다는 생각에 주위를 한번만 둘러봐 준다면, 겨울에 차에 시동을 걸기 전에 추위를 피해 차 밑에 자던 고양이가 있는지 살펴봐 준다면 좋겠다. 그리고 겨울을 바깥에서 나야 할 길고양이들은 무엇을 먹고 지낼까, 생각만이라도 한번 해주면 좋겠다.
이번 주말에는 병원 앞에다 고양이들이 겨우내 지낼 집을 좀더 높은 곳에 마련해주고 ‘이곳은 비지와 친구 고양이들이 사는 곳’이라고 알림판을 써 붙여야겠다.
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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