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1.01 19:39
수정 : 2014.06.1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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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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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다섯살인 로트와일러 ‘장군이’는 사람이 좋다. 장군이는 낮에 산책하지 않는다. 사람이 많을 때 장군이가 길에 나타나면 사람들이 무섭다고 싫어할까봐 가족들은 장군이를 한밤중에만 데리고 나온다. 유일하게 낮에 오는 곳이 동물병원이다. 병원에 와도 혹 다른 사람들이 놀랄까봐 바깥에서 기다리거나 병원 안에 있는 놀이방 울타리 안에 격리되어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강아지를 키우는 보호자들도 큰 개가 병원에 나타나면 강아지가 겁먹을까봐 강아지를 안으로 데리고 오지 않는다. 사람을 좋아하는 장군이는 자기를 알아봐주는 우리가 그저 좋기만 하다. 장군이가 반갑다고 두 발로 서서 매달리면 가끔은 ‘헉’ 소리가 날 정도로 아프기도 하지만, 격한 인사는 장군이의 반가움의 표현이다.
이런 장군이를 다시 보게 된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독이 든 음식을 먹고 중독증상을 보여 급히 오게 된 것이었다. 가족들은 누군가 고의로 먹을 것을 준 것 같다고 했다. 울면서 이웃집을 추측했다. 추측되는 이웃집은 장군이네와 나란히 사는 집인데 마당에 있는 장군이가 집 마당에서 돌아다니면 개를 묶어두라고, 저러다가 문이라도 열리거나 담을 넘어와 사람이라도 물면 어쩌냐고 전화가 오기도 해서 종종 마찰을 겪었다고 했다.
평소에도 장군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 이웃집에서 장군이가 있는 마당을 향해 돌을 던진 적도 있었단다. ‘사나운 개’라는 이유로 장군이를 싫어하던 그 집에서 그런 것 같은데, 가족들은 증거가 없다고 울었다. 장군이와의 이별, 가족들은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없었다.
지난 3월 전기톱으로 이웃집의 로트와일러를 내려쳐 죽인 혐의로 기소됐던 50대 남성이 최근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살해당한 개는 공격성이 강한 대형견으로 개 주인이 함께 외출할 때 목줄과 입마개 등 안전 조치가 필요한 맹견”이라며 “피고인이 자신의 개와 함께 공격당할 수 있는 급박한 상황을 고려했다”는 판결에 대해 검찰은 즉각 항소했고, 동물보호단체 등 많은 사람들이 이 재판 결과에 반발하고 있다. 나는 문득 장군이네가 떠올랐다.
로트와일러는 ‘맹견’으로 분류되어 외출이나 산책 시에 입마개를 해야 한다고 법적으로 규정된 개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처럼 무쇠같이 단단한 체구의 개다. 목소리도 크고 시커먼 외양이 무서워 보이긴 하지만, 키우는 보호자들에 따라서 같은 맹견으로 분류되는 로트와일러나 핏불테리어의 성격은 개마다 가지각색이다.
전기톱 사건은 그 정황을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쪽 편을 들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기본적으로 풀려진 개를 관리하지 못한 상황에서 죽은 개의 주인을 탓하는 것은 당연한 지적이다. 그러나 주인의 잘못과는 별개로 죽은 개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목줄이 풀려 있었기 때문에 개가 죽어 마땅한 것은 아니다. 안타까운 사고라고만 보기에는 분명 지나친 대응이다. 중요한 것은 죽은 개가 사람을 공격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공격하려고 덤벼들어 전기톱으로 내려친 것인지, 공격할 수도 있기 때문에 내려친 것인지 중요하게 따져볼 부분이다.
맹견으로 분류되는 품종이기 때문이 아니라 죽은 아이의 개별적인 성향이 ‘맹견’이었는지도 함께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 리트리버니까 착하고 로트와일러니까 사납고 무서운 것은 아니다. 맹인 안내견으로 잘 알려진 골든리트리버도 잘못 키우면 주인이 입마개조차 하지 못하는 무서운 개가 될 수 있다. 상근이 때문에 유명해진 순백의 그레이트피레네도 훈련과 교육이 없으면 살 떨릴 정도로 덤벼드는 개가 된다. 큰 개들이 진료를 올 때면 입마개를 하고 진료를 해야 하는데, 통제가 되지 않는 개들은 크기가 아무리 작아도 누구나 ‘맹견’이 될 수 있다. 거꾸로 생각해서 맹견에 속한 품종이라고 모두가 ‘맹견’은 아니라는 소리다.
전기톱 사건은 동물보호법 개정 이후 첫번째 동물과 관련한 실형 기소 재판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판결에 대해 동물보호단체에서는 “직접적인 흉기를 사용해 동물의 몸통을 절단하는 등 잔인한 동물학대”라며 피해 개 주인과 국민 정서를 고려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피고인을 엄벌해달라는 의견서를 항소심 재판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항소심에서는 좀더 많은 부분이 고려되었으면 한다.
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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