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보스는 10살이 넘은 골든레트리버다. 보스의 할아버지는 일흔이 넘으셨다. 난 처음 보스와 할아버지를 만났을 때를 잊지 못한다. 할아버지가 한 손에 쇠못이 잔뜩 박힌 각목을 들고 자전거에 개를 묶어 병원으로 왔다. 깜짝 놀랐다. 할아버지가 심장사상충 예방을 안 한다는 말에 꼭 해주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할아버지는 손주가 강아지를 샀다가 군대를 가게 되어 자신이 맡아 기른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며, 이젠 힘이 달려 귀찮다고 퉁명스럽게 말씀하셨다. 그 모습을 보며 보스가 바깥에서 ‘어쩔 수 없이 키워지는 개’는 아닐까 싶어서 안쓰러웠고 행여 그 각목으로 보스를 위협하는 건 아닐까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보스가 처음에 내원한 이유는 발가락에 있는 혹 때문이었다. 혹이 자꾸 덧나서 걸을 때마다 힘들어한다는 것. 약을 먹여도 낫지 않는다는 어르신 얘기에 나는 발가락 사이 염증이 만성적으로 문제가 되어 재발할 수 있다고 설명해드렸다.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 조직검사를 하자고 했다. 할아버지는 다른 병원에서 수술도 해보고 조직검사도 해봤지만 낫지 않았다며 “그놈들처럼 사기 치지 말고 다른 방법으로 치료할 수 있냐”고 막무가내로 요구하셨다. 또 “자장면 사 먹으라고 자식들이 주는 돈을 모아 치료하는 것이니 절대 비싸게 받으면 안 된다”는 무서운 당부의 말씀을 덧붙였다. 3주에 걸친 치료와 설득 끝에 보스는 수술을 받았다. 결국 할아버지가 몇달은 자장면을 못 드실 비용이 나오긴 했지만 수술 경과가 좋아 나는 보스 할아버지에게 작게나마 신임을 얻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보스와 할아버지는 10년 동안 산책을 다니는 걸로 동네에서 유명했다. 보스를 키우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함께 산책했다는 것 외에도 아침과 저녁에 같은 곳을 빙빙 돌면 지루할까봐 8자 코스로 다른 곳을 보여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 몇년 전 보스가 동네에서 몰려다니는 진돗개들과 마주쳐 공격당하는데 할아버지가 쫓아내고 지켜주는 게 힘에 부쳐서 미안하셨단다. 호신용으로 보스를 위해 직접 각목을 만든 것이란 사연도 들었다. 그래도 심장사상충 예방만은 거부하는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계속 사상충 예방을 입에 달고 사는 나에게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처음엔 보스도 마실 나오면 뛰고 나도 뛰었고, 그 뒤엔 나나 보스나 힘이 좋아 자전거를 탔어. 그러다 보스가 자전거를 따라오지 못하더라고. 이제는 둘 다 늙어서 자전거를 지팡이 삼아 같이 걸어 다녀. 난 보스가 나보다는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 내가 자전거 끌고 다닐 기력이 없고 먼저 가기라도 하면 보스는 어떡해. 그러니까 난 예방 같은 건 안 할 거야.” 난 그날 이후로 더이상 보스 할아버지에게 심장사상충 예방을 권하지 않았다. 즐겁게 재롱을 보실 겸 어른들께 어린 강아지를 사서 드리는 경우가 있다. 사정이 생겨 자녀가 키우던 동물을 부모님이나 시부모님께 위탁하는 경우도 많다. 동물이 주는 행복감이 있지만, 나이 든 분들이 나이 든 동물과 함께 지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아무 음식이나 주는 것 때문에 자식들과 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아기처럼 손이 가다 보니 동물을 씻기는 것도, 귀 청소나 청결 관리, 건강 관리해 주는 것도 버겁다. 나이 들어 병치레하다가 떠나는 동물들에게 감정이입을 하다 시름에 빠지는 어른도 주변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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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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