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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5.16 18:51 수정 : 2014.06.13 15:37

[토요판]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우리 병원은 ‘실버’병원이라고도 불린다. 나이 든 동물이 주된 환자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나이가 많다 보니 위급을 다투는 중증 질환이거나 완치가 되지 않는 꾸준한 관리를 요하는 질병을 가진 동물들도 상당수다.

10년 이상 병원 한번 가보지 않던 아이가 갑자기 쓰러져 큰 수술을 받기도 하고, 몇 년째 심장병 때문에 계속 약을 먹는 아이도 있다. 동물이 병에 걸리면 그 가족들도 동물병원에서 모인다. 아이가 뇌종양 진단을 받고 슬퍼하는 가족과 림프암 때문에 항암치료를 받는 아이의 가족도 모두 병원에서 반상회 하듯 모여앉아 자기 아이들의 아픔을 이야기하며 마음을 공유한다.

동물들의 질병도 사람의 질환과 유사하다. 나이가 들면서 혈압약을 먹고, 호르몬 관련 질환 때문에 검사를 받고, 신부전 때문에 투석을 하고 악성 종양으로 큰 수술을 받기도 한다. 의학이 발전해 완치가 안 되는 병도 조기에 발견하면 꾸준히 관리하며 오랜 시간을 함께 살 수 있다. 모든 질환이 다 ‘노환’으로 치부되어 치료를 하지 않던 시절은 지났다.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예전엔 10년 넘게 동물병원 안 다니고 잘 살다 갔는데 요즘 동물들은 왜 이렇게 아플까요?” 요즘 동물들이 아픈 게 아니라 예전에는 진단하는 의학이 그만큼 발달하지 못해 아픈데도 그냥 넘어갔기 때문이다. 또한 순종만을 고집하는 풍토로 인해 유전질환이 대물림되는 것도 질병의 원인이기도 하다. 의학이 발전하면서 동물도 사람처럼 평균 수명이 늘었다. 동물도 나이가 들면 아프다. 피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을 키울 땐 늙고 병들어도 돌봐줄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나이가 많은 동물 환자 중 일부는 고집이 센 노인과 비슷하다. 꾸짖거나 힘으로 제압해 다룰 수 있는 환자들이 아니다. 살아온 세월이 있기 때문에 나름 ‘어르신’으로 인정해줘야 한다. 한마디로 그들을 대하는 ‘예의’가 필요하다. ‘어르신 환자’들은 때때로 고집을 부리는 통에 30분 걸릴 검사나 치료가 두 시간 넘게 걸리기도 한다. 그런 것도 감수해야 한다.

꼭 ‘어르신 환자’가 아니더라도 사람이 다른 생명을 대하는 데에는 기본적인 ‘예의’가 필요하다. 잠깐 마주치는 동물 환자도 존중받기를 원하는데, 20년 가까이 함께 사는 동물 가족에 대한 예의는 당연히 필요할 것이다. 그 바탕은 인정과 배려라고 생각한다.

동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고, 동시에 엄청난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소통’은 쉬운 일이 아닌데, 동물과의 관계에서 소통하고 맞춰나가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사람은 혼자가 아닐 때 더 사람다움을 느끼게 된다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동물을 가족으로 맞아 더 사람다움을 느끼게 된다. 또한 동물의 보호자가 되면서 책임감, 성찰, 배려, 인내 등을 배운다. 인간이 더 인간다운 존재로 성장하게 된다.

박정윤 수의사
<한겨레> 토요판의 시작과 함께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라는 이름으로 글을 써온 지도 3년째다. 내 글엔 유독 노령 동물 이야기가 많았다. 그런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동물을 돈 주고 사거나 몇 년 키우고 버리는 물건으로 보지 않고, 20년 보호자가 되어줄 준비가 됐을 때 동물을 키우자는 마음가짐을 공유하기 원했기 때문이다. 또 동물에 관해 잘못된 상식이나 꼭 알아야 할 것들을 전하고 싶었다. 수의사는 환자인 동물과 보호자인 사람을 함께 돌보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동물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보호자인 사람을 만나며 시간을 공유해야 한다. 그래서 더 힘들지만 분명 매력 있고 자랑스러운 직업이다. 글재주 없는 제가 주절주절 써왔던 글들을 읽어주신 분들께 지면을 빌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끝>

박정윤/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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