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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1.27 21:11 수정 : 2014.06.13 16:46

이진순 미국 올드도미니언대학 교수

[토요판] 이진순의 엄마의 콤플렉스

서양의 달력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점으로 기원전과 후로 나뉘고, 엄마들의 인생은 첫아이의 탄생을 기점으로 기원전과 후로 나뉜다. 아마도 조물주는 성인의 나이가 되어서도 쉽게 철들지 못하는 인간들을 위해 아이를 키우며 인생을 복습하라는 숙제를 내리신 듯하다. 내 인생 AD의 역사가 시작된 날 이후, 나는 매일매일 시험에 들고 매일매일 죄를 지으며 매일 밤 반성하고 다음날 또 시험에 든다. 인간의 천부적 가치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것, 개인의 자유와 선택의지를 옹호하며, 그 어떤 경우에도 폭력이나 폭압으로 개인을 강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들에 대해서, BC 시대의 나는 어쩜 그리도 가당찮게 명쾌하고 자신만만했을까.

아이가 제일 사랑스러울 때는 잠들어 있을 때다. 매일 밤 아이가 잠들고 나면 그 머리맡에 앉아 이불을 덮어주고 이마를 쓰다듬으며 엄마의 하루 회개가 시작된다. 오늘 아침 널 깨울 때부터 학교 보낼 때까지 따뜻한 포옹 한번 제대로 못하고 종종거리며 잔소리만 해댔구나. 시험 보고 온 너한테 네 친구 누구누구는 몇 점 받았는지 공연히 안 해도 될 소리로 비교하고 경쟁시킨 거 미안해. 오늘 엄마가 할 일이 너무 많다고 너랑 컴퓨터 볼링게임 하기로 한 거 내 맘대로 취소해서 미안하고, 네가 하는 말 중간에 자르고 숙제 다 했는지부터 묻고 따진 것. 그래서 삐진 너한테 숙제장 빨리 안 가져온다고 짜증내고 소리 지른 것도 미안해. 네가 제일 싫어하는 게 엄마가 너를 멍청이 바보라고 부르는 건지 잘 알면서, 숙제검사 하면서 멍청이 바보라고 열 번도 넘게 욕한 것도 미안하다. 우리 어린 시절의 폭력과 폭언의 트라우마가 얼마나 깊은 상처로 남았는지 엄마 친구랑 전화로 떠들어대면서 정작 엄마는 올해에도 서랍에 넣어둔 “사랑의 매”를 버리지 못했다. 미안하다.

잠든 아이의 이마에 뽀뽀를 하고 참회를 할 때는 이제 정말 잘해봐야지 싶다. 이불에 폭 싸놓고 보니 아직도 참 작은 몸뚱이다. 길이 130㎝의 이 미스터리한 생명체가 어쩌자고 내 삶의 우주가 되었을까. 여과 없이 알몸을 드러내는 일상의 시험대에서 자식은 내 삶의 진정성을 묻는 리트머스 종이가 되고 자괴감의 블랙홀이 된다. 나이가 드니 알겠다. 모든 부모에게 가슴에 징을 박는 제일 혹독한 말이 “엄마가 뭘 해줬다고 그래?”인 이유는 어떤 부모든 자기 가슴 깊은 곳 한켠에 스스로 “자식한테 제대로 못해줬다”는 쓰라린 자괴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그런데 아까부터 수상쩍은 소리가 난다. 잠든 줄 알았던 아이가 여태 안 자고 뽀스락대는 소리다. “지금이 몇 시냐? 아침에 못 일어나면 알아서 해. … 뭐? 엄마한테 꼬박꼬박 말대꾸야, 당장 불 꺼!” 결국 천장을 찌르는 고함으로 하루를 급마무리. 오늘의 반성도 3초 만에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말았다. 잠든 아이는 예쁜데 잠 깬 아이는 늘 이론과 다르니 그것이 문제다.

이진순 미국 올드도미니언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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