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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3.23 20:52 수정 : 2014.06.13 16:51

이진순 미국 올드도미니언대 교수

[토요판] 엄마의 콤플렉스

내게 유년의 기억은 모두 조각난 것뿐이다. 어머니는 내 집 장만을 평생의 목표로 삼고 사셨다. 내 유년의 절반 동안은 날로 쪼그라드는 살림 때문에, 그 이후 절반은 어느 날 복권처럼 당첨된 아파트의 중도금과 잔금 때문에 셋방을 줄여가며 이사를 하느라 어느 한 곳에 2년 이상 머무른 적이 없다. 남루한 이삿짐 박스는 풀지 못한 채로 쌓여 있다가 다음 셋집으로 옮겨지곤 해서 좀먹고 곰팡이 슬고 쥐가 파먹어 못쓰게 되었다. 내가 아끼던 동화책이며 스케치북,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와 일기장은 잦은 이사 끝에 엿장수한테 넘어갔고, 집은 식구들이 사는 곳이라기보다는 언젠가 다가올 아파트 입주를 기다리며 임시로 버티는 이삿짐 보관 창고였다. 마침내 엄마가 그토록 꿈에 그리던 아파트에 입주한 것은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동생이 군대를 간 이후였다. 아파트는 생겼지만 그 집에서 오순도순 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난 지금도 이사라면 진저리를 친다. 남의 집 이삿짐만 봐도 공연히 심란해지고 멀미가 난다.

산동네 판자촌에서 나고 자란 친구가 있다. 재개발 붐이 불 때 철거민 운동에도 관여했고 결혼한 뒤에는 보험사 외판원을 하며 알뜰살뜰 빠듯한 살림을 꾸려왔다. 몇 해 전 아파트 값이 무섭게 폭등했을 때 우연히 그 친구를 다시 만났다. 얼굴이 화사했다. 어렵사리 장만해둔 아파트 값이 껑충 뛰었다고,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신 것 같다고 했다. 눈물까지 글썽이며 기뻐하는 친구를 비난할 수는 없었지만 차마 축하한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부동산 폭등이 비정상적 투기 열풍이라면 그게 하락하는 건 정상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미 부동산의 인질이 되어버린 중산층에게 집값 하락은 재앙이다. 집을 가진 자들은 부동산에 관한 한 별 망설임 없이 투기세력과 같은 편이 된다. 뉴타운 공약에 후끈 달아오르고 집값 폭등에 환호하며 비정상적인 부동산 거래를 방임하고 묵인하고 동조한 우리 세대는 부동산 투기의 공범이다. 그 대가로 이제, 대출금 이자 갚기에 허리가 휘며 언젠가 다시 집값이 오르기만을 고대한다. 사람이 집에 사는 게 아니라 집이 사람을 갉아먹는다. 부동산 투기의 공범이 치러야 할 죗값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푼 두푼 월급을 모아 내 집 장만을 하는 시대는 이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서울의 도시근로자 가구가 최소한의 지출을 하며 저축을 해도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려면 56년6개월이 걸리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 자식들은 평생을 일해도 집 장만은커녕 전세금 마련도 힘겨운 세상이다. 돈 있는 부모가 있어야 자식도 성공하고 집값을 보태줄 부모가 있어야 자식도 집을 가질 수 있다. 부의 대물림 경쟁에서 승자는 상위 1%뿐이다. 성실하게 일한 만큼 성취하는 세상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다면 미친 땅따먹기 노름에서 이제 그만 빠져나와야 한다. 집에 저당 잡혀 배반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이진순 미국 올드도미니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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