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2.24 20:36
수정 : 2014.06.13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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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 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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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보경의 달콤한 통역 왈왈
6년 전쯤이다. 한밤중에 울린 전화를 받은 엄마가 진저리를 친다. 동네 개발하자는 진정서에 서명하라는 거란다. 당시 뉴타운 바람이 일면서 낡은 주택이 많은 우리 동네에도 그 광풍이 불어닥친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불안감을 드러냈다.
“여기서 산 지 30년인데 이게 무슨. 아파트 못 지어서 지랄들이 났구만.”
“쫓겨나면 시골 가야지. 이제 서울에는 갑부 아니면 주택에 못 사는가 보네.”
광풍은 한동안 지속됐다. 개발에 어느 집이 찬성 사인 했다더라, 높으신 분이 개발을 약속했다더라, 아파트가 들어서면 땅값이 얼마까지 오른다더라 등 ‘카더라’ 통신이 만발했다.
당장 우리 집도 고민이었다. 지은 지 20년이 넘어 집수리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일이 터진 것이다. 나는 고치고 계속 살자고 주장했지만 한번 개발 바람이 불면 개인이 이길 수 없으니 큰돈 들일 필요 없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이참에 나이 든 부모님을 따뜻한 아파트로 모시고 싶은 마음에 시집장가 간 자식들까지 와서 연일 고민이 이어졌다.
사실 나는 함께 사는 동물 가족이 걱정이었다. 15살 노견이 살던 공간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적응할 수 있을지, 혜화동 골목을 누비던 우리 집 외출 고양이는 영락없이 갇히게 생겼고, 마당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들은 어떻게 하나. 인간 셋과 노견 하나, 외출 고양이 하나, 열 마리 남짓한 길고양이가 졸지에 익숙한 삶터를 잃을 상황이었다.
그날도 형제들과 얘기를 나누다 얼굴에 열이 올라서 식힐 겸 마당에 나갔는데 길고양이들이 하나같이 근심스런 얼굴로 현관 앞에 쪼르르 앉아 있었다. 평상시 같으면 마당에서 뛰놀거나 밥을 먹고 졸던 녀석들이 말이다.
“걱정 마. 너희들 밥 먹는 이 집 뺏기지 않을 거야. 만약에 이사 가도 너희들 데리고 갈 거니까 걱정 말고 가서들 놀아.”
솔직히 개발에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 맞서 이길 자신은 없었다. 다만 이사를 가더라도 밥 주던 녀석들은 책임지리라 생각했다. 2년 내로 개발 착수 약속을 받아냈다는 근거 없는 루머를 끝으로 다행히 개발 광풍이 잦아들면서 동네는 평온을 되찾았다. 곧바로 토목공화국이 들어서 다시 쫄았지만 다행히 4년을 또 버텼다. 서울시장 임기까지 합하면 총 8년. 낡은 주택이 있고, 골목에 아이들과 개가 뛰놀고, 담벼락 밑에 길고양이 밥그릇이 뒹구는 오래된 동네가 안락사를 면한 것이다. 최근에는 우리 동네에 집이 나오면 속속 사들이고 있는 대기업이 조만간 큰 사업을 벌일 거라는 루머도 있지만 까짓 8년 치하도 견뎠는데.
지금도 근심 가득했던 길고양이들 얼굴이 생생하다. 인간의 복잡한 인생사와 고민을 녀석들에게 온통 들켜버린 그날. 도심 개발은 사람과 인연을 맺고 사는 도시 동물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그때 경험했다. 철거 개 이야기를 미디어를 통해 접했지만 내가 겪기 전까지 그건 남의 일이었다. 야생동물은 삶터를 잃고 도시로 찾아들고, 돌봐줄 사람을 잃은 도시 개들은 야생화되는 세상이다. 이제 1년만 버티면 우리 동네의 안락사 유예기간은 해제되는 셈인가. 김보경 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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