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4.06 20:43
수정 : 2014.06.1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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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인 김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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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보경의 달콤한 통역 왈왈
동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면 병원 출입이 잦아진다. 그래서 나이 든 개·고양이와 사는 반려인은 의료비 걱정이 많다. 우리 집 개도 평생 입원 한 번 없이 건강하게 살더니 17살을 넘기면서 병원을 찾는 횟수가 많아졌다. 그런데 작년 7월부터 반려동물 진료비에 부가세가 붙으면서 진료비가 10%나 덜컥 올라버렸다. 반려동물은 건강보험이 없는데다 나이 들면 이런저런 검사가 많아 부담이 더 큰데 거기에 부가세까지 더해지니 진료비 청구서를 받을 때마다 입이 떡 벌어졌다.
반려동물 진료비 부가세 시행을 앞두고 서명과 반대 집회가 이어졌지만 효과는 없었다. 아파서 병원을 찾은 동물 치료비에 미용성형수술에 붙는 부가세를 붙이다니. 정부는 유럽도 반려동물 진료비에 부가세를 붙인다고 변명했지만 동물 관련 복지 시스템이 거의 작동하지 않는 우리 실정에 동물 복지 선진국인 유럽과 비교를 하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반려동물 생산, 판매에 대한 변변한 시스템 하나 없어 유기동물을 양산하면서 참 염치없는 변명이다. 그러며 생각했다. 입법자에게 반려인, 동물권 옹호론자들은 참 만만한 집단이구나.
현재 미국의 부통령인 조 바이든은 2008년 셰퍼드 순종을 샀다가 동물보호단체로부터 몰매를 맞았다. 순종을 ‘사지’ 말고 보호소에서 유기동물을 ‘입양’하자는 캠페인을 벌이던 동물단체들은 ‘조 바이든이 개 한 마리를 새로 사면서 보호소에서 한 마리가 죽게 됐다’고 주장했고 바이든은 사실은 한 마리를 더 입양할 계획이었다고 서둘러 해명했다. 이보다 앞서 1966년 미국에서는 베트남전쟁 등의 굵직한 이슈 사이에서 동물복지법이 빠르게 제정됐다. 집을 나간 개가 밀매업자에게 잡혀 병원에서 실험견으로 쓰이고 안락사당한 일이 발생하자 자신의 반려동물이 같은 처지가 될까봐 두려웠던 반려인들이 상하원 의원에게 편지 공세를 퍼부은 덕분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무슨 차이일까? 한국의 반려인이나 동물단체도 나름 한다고 하는데 말이다. 아마도 조직화되지 못한 반려인, 수적으로 적은 동물권 옹호론자들이 그들 눈에는 위협적인 유권자로 보이지 않아서인 모양이다. 조 바이든이나 1966년의 미국 의원들도 어느 날 갑자기 생명의식이 높아진 것이 아니라 다만 유권자가 무서웠을 것이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표가 우수수 떨어져 나갈 것 같았을 테니까.
동물은 유권자가 아니다. 투표권도 없고, 자신들의 처지를 말로 표현하지도 못한다. 그러니 그들의 대변인을 자처한 사람들의 몫이 크다. 구제역으로 350만마리의 생명이 살처분되는 지옥을 겪고도 농장동물의 복지에 관한 제대로 된 법안 하나 만들지 못하고, 매년 150만마리의 동물이 실험에 쓰이고 희생되는 동물실험 천국의 비극에서 벗어나려면 말이다. 며칠 후면 국회로 들어갈 300명이 가려진다. 반려인과 동물권 옹호자들이 그들에게 위협적인 유권자로 보일 날이 머잖아 오리라 믿는다.
최근 사찰정국에서 자주 언급되는 워터게이트 사건의 리처드 닉슨은 1952년 불법 정치자금 의혹으로 정치 생명이 끝날 뻔한 적이 있다. 그때 자신이 개인적으로 받은 것은 강아지 체커스뿐이고, 체커스는 가족이라 끝까지 함께할 거라는 유명한 ‘체커스 연설’로 위기를 탈출한다. 명백한 불법이 이따위 감성적인 연설에 묻히다니 동물을 대변하는 유권자는 감성에 휘둘리지 않는 냉철한 판단력 또한 갖추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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