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06.16 10:05 수정 : 2014.06.25 10:21

송지현 소설 <흔한, 가정식 백반> ⓒ이현경



송지현 소설 <1화>



차선 변경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우측 깜빡이를 켜고 한참이 지나서도 옆 차선으로 끼어들지 못했다. 조수석에 앉은 고목 이모가 창문 밖으로 손을 뻗어 흔들었다. 이모, 이모 손이 백미러를 가리고 있어. 고목 이모가 멋쩍은 듯 손을 치웠다. 그러고 나서야 겨우 끼어들 수 있었다. 고목 이모는 무릎에 손을 가지런히 올린 채 한동안 조용했다. 나는 운전하는 내내 뒷좌석을 흘끔흘끔 보았다. 103호 이모는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와는 달랐다. 사람 둘만 모이면 쉬지 않고 떠드는 103호 이모였다. 103호 이모 옆에서는 엄마가 창문에 머리를 찧으며 졸고 있었다. 나는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내비게이션이 목적지까지 98킬로미터가 남았다고 알리고 있었다.

고목 이모와 103호 이모를 알게 된 곳은 24시 여성 전용 사우나였다. 간판엔 궁서체로 ‘여성한증’이라고 적혀있었는데, 가끔 간증처럼 발음되기도 했다. 그곳에선 두 가지 호칭으로 관계를 정리한다. 언니 혹은 이모. 그 앞에는 별명을 붙인다. 별명이 붙여지는 데엔 별 의미도, 이유도 없다. 예를 들어 103호 이모의 경우. 그날 이모는 한증막 안에 오래 있었다. 현기증이 일어 나가려다 고꾸라졌고, 잠시 후 고개를 들었을 땐 그곳을 천국으로 착각하였다. 어지러운 시야 속으로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천사인가, 이모는 중얼거렸고 천사가 입을 열었다. 103호, 월세 삼 개월짼 거 알지? 그 뒤로도 이모는 집주인과 몇 번이나 마주쳤고, 모두가 이모를 103호라고 불렀다. 고목 이모의 별명은 엄마 덕에 생겼다. 목욕탕에 들어온 고목 이모를 보고 엄마는 탄성을 질렀다. 아, 고목처럼 크다. 식혜 이모도 좌욕 이모도 그 탄성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자식의 이름으로 대신 불리는 다른 여자들처럼, 엄마의 별명 또한 내 이름이었다. 엄마는 내 이름으로 불리는 걸 좋아했다. 사실 내 이름은 엄마가 갖고 싶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의 호칭 탓에 엄마는 종종 나의 이모나 언니로 불렸고, 나는 종종 엄마의 동생이나 조카처럼 굴었다. ‘여성 한증’에서, 우리는 대가족이었다. 수많은 언니와 이모가 있었다. 어떤 날은 그곳이 진짜 집이고 모두가 진짜 가족인 양 느껴졌다.

야, 우리 휴게소 가서 뭐 좀 사 먹고 가자. 고목 이모의 말에 나는 차를 오른쪽으로 붙였고, 이번엔 쉬웠다. 휴게소에 도착해서도 103호 이모는 말이 별로 없었다. 입맛이 없다는 이모를 끌고 우리는 우동 코너에 가서 튀김우동 네 개를 시켰다. 우동 네 그릇이 금세 깨끗이 비워졌다. 103호 이모의 그릇엔 국물도 없었다. 엄마가 103호 이모에게 물었다. 빚 받으러 가는 거 맞아? 103호 이모가 대답했다. 그런 거 아니면 내가 왜 이렇게 고생을 하겠어. 고목 이모가 다시 물었다. 대체 누구한테 받으러 가는 건데? 103호 이모가 잠깐 생각하다 대답했다. 내 남편.




송지현(소설가)





송지현

1987년에 태어났다. 201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펑크록스타일 빨대 디자인에 관한 연구〉가 당선되었다.




한겨레출판 문학웹진한판 바로가기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송지현의 <흔한, 가정식 백반>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