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현 소설 <3화>
103호 이모를 처음 만난 날, 한증막은 한산했다. 때도 밀고 부항까지 떴는데 아직 한낮이었다. 구석에서 처음 보는 이모 두 명이 점 백짜리 맞고를 치고 있었다. 한 명은 눈썹 문신이 진했고, 다른 하나는 별 특징이 없었다. 고목 이모가 고스톱 판을 기웃거리다가 말했다. 우리도 끼워줘요. 눈썹 문신이 진한 이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남편 올 시간이 돼서 가봐야 해. 앉아 있던 이모가 우리에게 말했다. 네 명이면 딱 맞네, 한 명 광 팔고. 우리 넷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고스톱을 쳤다. 이모가 화투짝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다들 날 103호라고 불러. 그날부터 103호 이모와 우리 셋은 함께 한증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 뒤 매일같이 만나면서도, 우린 103호 이모에게 남편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한증막에 있으면 다들 자기 얘기를 쏟아내기 바쁜데―심지어 옥수수 쪄 먹은 얘기조차도 그곳에선 방대한 장편소설이 되었다―103호 이모는 자기 얘기는 하지 않았다. 대신 자기와 상관없는 얘기는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었다.
103호 이모는 혼자 살았다. 이모가 사는 103호는 반지하였다. 집주인은 지대가 높아서 반지하가 아닌 1층이나 다름없다고 우겼다. 도배를 새로 해놓고 누가 집을 보러 올 때마다 난방을 뜨끈하게 틀어놓았다. 이모가 집을 보러 다닌 건 신발 속으로 눈이 푹푹 들이치는 날이었다. 추위에 떨며 부동산 업자와 길을 헤매던 이모는, 그 집에 들어가자마자 노곤해지는 걸 느꼈다. 따뜻하고 아늑한 집인 것 같았고, 이모는 부동산 업자에게 계약하겠다고 말했다. 부동산 업자가 서류를 가져왔다. 이모는 서류에 사인을 하면서 얼른 이불을 깔고 눕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모는 그 집에 사는 내내 곰팡이와 전쟁 중이다.
이모가 사는 건물의 3층엔 엄마와 내가 살고 있었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이 집에서 쭉 살아왔다. 집주인과 세입자들이 몇 번 바뀌는 동안, 우리는 이웃과 친하게 지낸다는 게 부질없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103호 이모와 알고 지내지 않았다. 이 건물에서 오래 사는 사람은 없었다. 이곳은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한 베이스캠프 같은 거였다. 사람들은 계약이 만료되면 그동안 모은 돈과 전세금을 합쳐서 아파트로 가거나,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 이곳에 살면서 나는 한 번의 장례식과 한 번의 자살 소동을 겪었다. 죽은 사람은 알코올중독이던 사십 대 여자였다. 유치원에 다니던 여자의 딸은 늘 술병이 든 비닐봉지를 들고 다녔다. 장례식이 끝나고 여자의 딸은 누군가 와서 데려갔다. 그 집은 한동안 비어 있었다. 자살 소동을 벌인 것은 당시 나와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던 여자애였다. 처음 몇 번은 말을 걸어도 봤지만 우린 결국 친해지지 않았다. 대신 그 애의 동생과는 자주 마주쳤다. 함께 떡볶이를 먹거나 만화책을 빌려보기도 했다. 동생은 내게 언니를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말해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사건을 독보적인 걸로 착각하곤 해. 동생의 말이었다. 그 집 역시 자살소동을 벌인 딸이 대학에 붙자마자 이사를 갔다. 이 건물에서 그나마 단란해 보이던 집이었다.
떠난 사람들과는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떠나고 나면, 우리가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누가 이사를 오고 가든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모두의 목적지는 달랐고, 여긴 그저 통과하는 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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