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현 소설 <6화>
고목 이모는 여행 준비로 들떴다. 렌터카 회사에 전화를 걸어 내비게이션 대여부터 자동차의 연료공급 방식에 대해 물어보기까지 했다. 기차와 버스 편도 알아보았지만, 결국 차로 가는 게 편하고 더 저렴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엄마와 나, 103호 이모는 어떻게 가든 별 상관이 없었다. 엄마는 주말만 안 끼면 된다고 했다. 주말에는 그나마 손님이 있으니까. 103호 이모는 대전에 있는 행복식당에 꼭 가야 한다고 했다. 고목 이모는 대전 행복식당을 검색했다. 검색어 첫 줄에 누군가의 리뷰가 나와,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글을 읽었다. 전국의 맛있는 식당을 돌아다니며 평가하는 게 취미인 사람인 듯했다. 그는, ‘가정식 백반집입니다. 맛은 그냥 집에서 먹는 거랑 똑같네요’라고 적었다. 우리는 약간 실망했지만 103호 이모가 꼭 가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주소를 잘 적어두었다.
고목 이모는 여행 수첩에 예상 경비와 이동 수단, 가져가야 할 것들을 적었다. 이모는 친구들과 여행을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모는 여행 준비 자체를 즐거워했다. 어린 시절 본 외국 영화에서 여자애들이 하던 파자마 파티가 생각난다며 파자마를 챙기기도 했다. 파자마라고 해봤자 무릎이 나온 추리닝과 목이 늘어난 흰 티셔츠였지만. 그리고 마지막엔 낡은 자동차를 얻어왔다. 아는 사람이 중고로 싸게 넘겼다는 자동차는 오래된 것은 둘째 치고, 금색이었다. 언젠가 타게 되리라고 생각했던 차와는 많이 달랐으므로, 차를 마주한 나는 조금 어색했다. 게다가 금색이라니. 나는 조금이라도 튀는 옷을 입고 나갔다가는 10분도 안 되어 귀가하곤 했다. 자동차를 타고 ‘여성 한증’ 주변을 돌면서 고목 이모는 옛날엔 이 차가 국민 자동차라고 불렸다는 걸 강조했다.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이 몰았던 차의 창문을 열고 팔을 걸쳐보았다. 익숙해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엄마는 여행 가기 좋은 날짜를 점쳤다. 엄마는 6년 전, 집 근처 문화센터 명리학 코스에 등록했다. 초보 코스부터 전문가 코스까지 배우는 데 2년이 걸렸다. 수업이 끝나면 엄마는 아줌마들과 함께 커피숍에서 사주 하나를 놓고 운명을 점쳤다. 아줌마들은 번갈아가며 자식과 남편 사주를 들고 왔다. 엄마는 1년 동안 자신의 사주만 들여다보았다.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엄마의 얼굴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초보 코스를 수료했을 땐 밤에 훌쩍훌쩍 울기도 했다. 당시 고3이던 나는 엄마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위로했다. 낮에 무슨 일 있었어? 엄마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 사주팔자엔 볕 들 날이 없어. 중급 코스에 들어갈 무렵, 엄마는 자신의 사주에 초연해졌다. 최악의 대운도 잘 넘어갔으니, 앞으로의 인생도 그럭저럭 괜찮지 않겠냐는 거였다. 그러고는 내 사주를 보기 시작했다. 내가 집 근처에 있는 전문대에 합격하고 나서 반수를 고민하던 때였다. 엄마는 반수를 말렸다. 네 공부운은 올해가 끝이고, 앞으로는 쭉 직업운으로 달려. 엄마 얘기를 듣고 보니 더 이상 수능 공부를 할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이 되니 살 것이 많아졌다. 얼른 돈을 벌어서, 사고 싶은 걸 맘껏 사고 싶었다.
1년 전, 엄마는 재운이 들어오는 때라면서 동네에 사주 카페를 차렸다. 손님은 얼마 없었다. 엄마는 내게, 젊은 학생들이 요즘 사주를 많이 본다던데 왜 장사가 안 되냐고 물었다. 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가게는 한때 전 국민이 타고 다니던 금색 자동차 같았다. 차라리 확 낡아버리면 클래식하다는 소리라도 들을 수 있겠지만, 이건 너무 어중간했다. 사주 카페엔 젊은 학생보단 돈 안 되는 단골손님이 많았다. 주로 동네 아줌마들이었다. 엄마는 아줌마들의 사주를 받아 들고 늘 이렇게 얘기했다. 그동안 엄청 힘들게 살았지요? 그럼 아줌마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엄마가 사주를 풀기도 전에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결국 사주 카페는 아줌마들이 넋두리를 늘어놓는 곳이 되었다. 엄마는 내년엔 문화센터 상담심리학 코스에 등록하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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