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현 소설 <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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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공장 생활은 별다를 게 없었다. 어떤 날은 7, 8, 9의 패드를, 또 다른 날은 *, 0, #의 패드를 끼웠다. 103호 이모의 남편은, 여자가 일하는 라인 맨 끝에서 완성된 휴대전화를 정리해 넣는 일을 했다. 모두 103호 이모의 남편을 실장님이라고 불렀다. 103호 이모의 남편은 그곳에서 일한 지 한 달째였다. 공장에선 나이 많은 남자는 신입이어도 실장이라고 불렀다. 103호 이모의 남편은 근처 여관에서 장기 숙박 중이었다. 친구를 만나러 왔다가 눌러앉았다고 했다. 그 공장도 친구의 소개로 들어왔다고, 여자에게 맥주를 사주며 말했다고 한다. 103호 이모는 또 놀랐는데, 남편은 이모에게 자기 얘기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실장은 일이 빨리 끝나면 여자의 일을 도와주었다. 여자의 뒤쪽 벨트에 앉아서 여자가 끼워야 할 부품을 미리 끼워주기도 했다. 두 사람은 자연스레 실장이 묵던 여관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 공장에서 일한 지 2년이 지났을 때 실장은 모아둔 돈으로 작은 식당을 하자고 했다. 요리는 자신이 할 테니, 서빙과 카운터를 보라고 했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103호 이모의 표정은 멍했다. 그리고 여자에게 물었다. 여기 소주 있어요? 이모는 소주를 한 잔 들이켜더니, 남편의 이름을 적고는 이 사람이 맞느냐고 되물었다. 이모가 아는 한 이모의 남편은 시끄러운 곳에서는 일을 못 하고, 요리라고는 한 적도 없으며, 남는 시간엔 늘 무언가를 깨부수는 사람이었다. 여자는 자신의 좋은 기억은 모두 실장님과 함께였다며 울기 시작했다. 갑자기 여자가 울자 우리는 당황했다. 고목 이모가 소주를 건넸다. 여자는 술을 못 한다며 거절했다.
한 달 전, 103호 이모의 남편, 즉 실장님은 스쿠터를 끌고 새벽시장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아침잠이 많은 여자를 깨우지 않고 굳이 혼자 나섰다. 그때 마주 오던 5번 버스의 기사는 졸고 있었고, 스쿠터를 보지 못했다. 허공에 파와 계란과 두부가 흩어졌다. 이어서 스쿠터와 103호 이모의 남편이 허공에 떠올랐다. 5번 버스의 기사는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절대, 졸지 않았다. 졸지 않을 뿐 아니라 깊은 밤에도 잠들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자는 한국의 여러 문화를 알았지만, 장례식은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었다. 여자는 공장에 전화를 해서, 실장의 친구를 찾았다. 실장의 친구가 장례 치르는 것을 도와주었다. 장례가 끝나고 한참 뒤에, 실장의 친구는 103호 이모를 기억해냈다. 이혼을 한 건지, 정확한 사정을 몰랐지만 수소문해서 이모의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전화가 왔을 때 이모는 귀마개를 하고 라이브 카페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휴대전화 진동이 울리자 귀마개를 뺐다. 시끄러운 소음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김씨 전부인 되시죠? 이모는 대꾸를 하지 않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한 번에 밀려든 소음 때문에 말을 잘못 알아들은 줄 알았다. 누군가의 부인으로 불린 건 5년 만의 일이었다.
103호 이모와 여자가 손을 마주 잡고 울기 시작했다. 고목 이모가 소주 한 잔을 들이켜더니 말했다. 아니, 이년들이 갑자기 왜 울고 지랄이래. 나는 오늘이 친구들하고 하는 첫 여행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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