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현 소설 <9화>
고목 이모는 사랑받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여성 한증에서도 다른 사람들과 마찰이 잦았다. 이모는 학교에 다닐 때부터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이모네 집은 동네에서 제일 잘살았다. 이모는 최고급 학용품을 가졌고, 반찬도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고등학생이 되기 전, 동네 여자애들은 공장으로, 식모로 떠나갔다. 이모에게는 친구라 부를 만한 여자애가 하나 있었다. 이모의 집에 놀러 온 여자애는 한참을 세계 문학 전집 앞에서 머물렀다. 여자애가 집에 간 뒤, 한 권이 사라진 것을 알았지만 이모는 개의치 않았다. 그 여자애도 서울의 어느 공장으로 떠났다. 전집 중 사라진 한 권처럼, 이모는 어느 한 곳이 빈 것 같은 학창 시절을 보냈다.
이모가 단정히 다린 교복을 입고 하교할 때였다. 서울로 갔던 그 여자애가 보였다. 이모는 여자애에게 다가가서 공손히 인사를 했다. 조양, 잘 지내셨어요? 여자애는 이모를 바라보며 씩씩거렸다고 한다. 그리고 부릅뜬 눈으로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너 같은 년이 제일 재수 없어! 이모는 그날 이후로 누구에게도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이모는 대학에 진학했다. 그 동네에서 대학에 간 사람은 이모와 이모의 오빠들뿐이었다. 이모가 2년 동안 대학에서 겉돌고 있을 때, 이모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두 분은 이모의 큰오빠가 처음으로 몬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했다. 이모는 꽤 오랜 시간, 부모님이 돌아가신 걸 큰오빠 탓으로 돌렸다. 그래서 운전면허 실기시험을 볼 때면, 누군가 자신을 원망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이모는 대학을 중퇴했다. 작은오빠는 이모 앞으로 작은 아파트를 얻어주었다. 이모는 동네에서 공부방을 운영했다.
여자애를 다시 만난 건 공부방에서였다. 여자는 이번에 초등학교에 들어갔다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그녀는 이모를 한참 뜯어보다가, 고목양, 잘 지내셨어요, 라고 말하고는 웃었다. 그때는 …… 정중한 말투가 어쩐지 모욕처럼 들리곤 했어. 여자의 말에 이모는 사과했다. 여자는 아들이 중학교에 올라갈 무렵 공부방을 옮겼다. 그녀는 고목 이모에게 책을 한 권 주었다. 제목은 《누구나 자서전을 쓸 수 있다》였다. 책을 읽다가 이모는 자신의 인생에서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생각했고, 언젠가 친구들과 꼭 여행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고목 이모는 이야기를 끝내고 103호 이모와 여자를 올려다보았다. 103호 이모와 여자가 고목 이모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고목 이모가 조금 울었다. 엄마가 한심하다는 듯 이모들과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가 수백 번도 더 들은, 동생을 업고 학교에 다닐 땐 말이야, 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장판에 벌러덩 누웠다. 오랜 시간 긴장하고 운전을 해서인지 어깨가 쑤셨다.
엄마의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어선지 그 모습이 사진처럼 펼쳐진다. 엄마의 엄마에게 업힌 어린 엄마, 다시 동생을 업은 국민학생의 엄마, 다시 나를 업은 이십대의 엄마……. 엄마는 늘 누군가에게 업거나 업힌 채였다.
엄마의 이야기가 한차례 끝나자 이모들은 이미 술에 취해 더 크게 울었다. 엄마가 말했다. 울렸으니, 대신 내가 앞으로의 미래를 점쳐줄게. 이모들은 네가 해주는 사주풀이는 많이 들었으니 이제 됐다고 했다. 여자가 조심스레 생년월일을 말했다. 외국인 사주는 처음인데, 라며 여자의 사주풀이가 시작됐고, 풍파가 많은 사주네, 로 마무리되었다. 엄마는 여자의 인생을 10년씩 나누어 풀이했고 그에 맞춰 앞으로의 일을 읊었다. 물 근처에 있어야 해, 라는 엄마의 말이 끝나자 지금 바다로 가자.
고목 이모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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