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현 소설 <10화>
그리하여 우리가 도착한 곳은 다시 24시간 여성사우나였다. 전국 어디에나 24시간 여성사우나는 있었고, 이모들은 그걸 기막히게 찾아냈다. 고목 이모는 계란을 까며 멋쩍게, 야간에 차를 타는 건 아직 좀 무섭네, 라고 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좌욕을 했다. 이곳의 좌욕 이모는 피곤했는지 숯을 넣자마자 구석에 모로 누워 잠이 들었다. 엉덩이는 뜨거웠고 가랑이 사이는 건조했다. 엄마가 식혜를 빨면서 우린 누구 덕 보며 살 사주는 아니야, 라고 했고 나는, 그럼 나도? 라고 물었다. 엄마는 대답 대신 빨대를 내 입에 넣어주었다.
석류탕 옆에서 103호 이모와 여자는 서로 등을 밀어주었다. 탕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고목 이모가 난데없이 노래를 불렀다. 차 안에서 듣던 철 지난 뽕짝이었다. 노래라면 질색하던 103호 이모가 흥얼흥얼 따라 불렀다. 후렴구가 탕 안에서 몇 번이고 부딪히다 사라질 때까지 우리는 때를 불리고 밀기를 반복했다.
알몸으로, 우린 한증막 안에 기어들었다. 불이 죽었는지 숨이 막힐 정도의 열기는 아니었다. 103호 이모가 말했다. 난 여기서 며칠 더 있다가 가야겠어. 고목 이모와 엄마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고목 이모는 다음 여행지를 선정했고, 엄마는 팔을 휘저으며 땀을 냈다. 막은 때론 동굴 같았다. 혹은 방공호라든가. 처음 보는 여자들도 땀을 내고 부대끼며 쉽게 친해졌다. 나는 방공호를 나와 보리차를 마셨다.
고목 이모는 속눈썹을 붙였다. 나머지는 얼굴에 팩을 붙이고 고스톱을 치며 이모를 기다렸다. 엄마는 패를 뒤집으며 또 점을 쳤다. 귀인을 만나는 날이라는군. 엄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목 이모가 낙타 같은 속눈썹을 깜빡이며 나왔다. 엄마는 손뼉을 치며 말했다.
고목에 드디어 꽃이 피었네.
그때였다. 종이봉투를 머리에 뒤집어쓴 남자 셋이 카운터 이모의 손에 이끌려 들어왔다. 그건 흡사 KKK단을 체포한 장면같이 보였다. 남자들은 익숙하게 한증막 안으로 들어갔고, 카운터 이모가 외쳤다.
막에 불이 죽어서 물 뿌리러 온 거예요. 놀라지 말아요.
여자들은 다시 하던 일로 돌아갔다.
익숙지 않은 운전으로 종일 긴장한 탓에,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수면실에선 희미하게 락스 냄새가 났다. 나는 어둠에 눈이 익어 네 여자의 실루엣이 보일 때까지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니까 이 어둠 속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는 건 각자의 서사를 가진 네 명의 여자였다. 고목 이모는 어디에 가려는 걸까. 해가 뜨면 바다를 보러 갈 수 있을까. 나도 언젠가는 사건이 될 만한 서사들을 가지게 될까. 스물여섯, 3년 사귄 애인과 평범한 이유로 평범하게 헤어졌다, 라고 생각했다가 금세 고쳤다. 스물여섯, 첫 차가 생겼다, 무려 금색이다.
잠든 사이, 꿈을 꾸었다.
여자는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다. 여자의 모습은 바다와 어울렸다. 여자는 주황색 비키니를 입고 있었는데, 구릿빛 살결 덕에 아주 근사했다. 여자가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바닷속에 풍덩 뛰어들었다. 찬물이 닿자 온몸의 감각이 살아났다. 나는 떠다니는 해초를 주워 여자의 귀에 꽂아주었다. 여자가 웃었다. 여자의 뒤쪽으로 분홍색 돌고래가 뛰어올랐다. 사람들이 손뼉을 쳤다. 나도 깔깔거리며 웃었다. 고개를 돌려 해변을 보니, 엄마와 이모들이 모래찜질을 하고 있었다. 고목 이모의 모래 더미는 커다래서 마치 봉분이 솟아오른 것 같았고, 103호 이모는 그 옆에서 잠자리 안경을 쓰고 무언가에 골몰해 있었다. 엄마는 돗자리에 앉아, 필리핀 사람들에게 사주풀이를 해주고 있었다. 나는 물에 둥둥 떠올라 하늘을 보며 웃었다. 모두 행복한 미래뿐이었고, 나는 물 꿈을 꾸었으니 복권을 사볼까, 생각했다.
(이상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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