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7.21 20:19
수정 : 2014.07.23 15:48
[잊지 않겠습니다 25]
격투기 선수 되고팠던 홍래에게
주변에서 항상 ‘엄마 껌딱지’라고 부를 정도로 늘 함께였던 우리 아들 홍래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보고 싶다는 마음뿐이구나. 연년생인 형과 학교 가는 시간 빼고는 항상 운동하러 가고, 잠자고.
지방에 계신 아빠가 못 올라 오실 때는 아빠한테 같이 다니며 서로 의지하며 쌍둥이처럼 지냈는데.
형도 너의 빈자리를 아파하며 힘들어 하는구나. 엄마가 일 끝나면 셋이 심야영화도 보러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나중에 어른이 되면 뭐든지 다해준다고 하던 아들인데. 다정하고 항상 웃으며 엄마 옆에서 조잘대며 딸 노릇까지 해주던 아들인데. 배타고 여행가는 건 처음이라며 설레고 기대된다고 하며 수학여행을 나섰는데. 너와의 마지막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사고 당일 엄마와 통화하며 “배가 기울어져서 구명조끼 입고 있으며 밖에 바다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할 때, 엄마는 그저 “선생님 말씀과 안내방송을 따르라”고 말했다. 내 자신이 너무 원망스럽고 미안할 뿐이구나.
구명조끼를 입고 있던 너를 꼭 살아서 볼 수 있겠다고 다짐하며 기다렸는데. 8일 만에 만난 너는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엄마 품으로 돌아왔더구나. 강한 아이라 구조될 거라 믿었기에 구명조끼를 누군가에게 벗어주고 돌아온 너를 보며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면 격투기 아마추어, 프로대회 나갈 준비도 열심히 하던 우리 홍래. 어제는 엄마, 아빠가 또 한 번 너의 옷을 부둥켜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두 달이 넘게 바닷속에서 녹슬고 흙투성인 옷을 보며, 널 애타며 기다렸다 만났을 때의 냄새와 똑같아서 눈물만 나오더구나.
우리 아들 홍래야. 엄마는 모든 게 미안하구나. 그곳에서는 고통도 없이 네가 이루고 싶은 거 하며 친구들과 선생님과 함께 늘 웃으며 행복하게 지내길 바란다. 엄마, 아빠의 아들로 태어나줘서 너무나 고맙고. 너의 형아도 지켜보며 보살펴주렴. 너무 보고 싶고. 사랑한다.
박홍래군은
“오늘 나는 서두원이 아니라 박홍래였습니다.”
5월31일 오후 강원도 원주 치악체육관에서 경기 시작 15초 만에 상대를 넉아웃시킨 서두원(33) 이종격투기 선수는 경기가 끝나자 이렇게 말했다. 경기를 보던 박홍래(17)군의 부모와 형 형래(18)군은 눈물을 흘렸다. 서 선수는 형래를 링 위로 불러 끌어안으며 “나, 약속 지켰다”고 말했다. 홍래는 세월호 침몰사고로 숨진 단원고 2학년 5반 학생이다.
홍래의 꿈은 이종격투기 선수였다. 한 살 위인 형과 함께 체육관에서 이종격투기를 배웠다. 특히 서 선수를 좋아해 자신의 방에 사진도 여러 장 붙여놨다고 한다. 홍래와 형래는 6월 이종격투기 대회에 함께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홍래는 세월호 사고 8일째인 4월23일 숨진 채 발견됐다. 배가 침몰하기 전 “형, 무섭다. 살려줘”라고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가 홍래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동생의 장례를 마친 형래는 서 선수 소속사에 전화를 걸었다. 동생에게 마지막 선물을 하고 싶었다. 사연을 전해들은 서 선수는 5월1일 홍래의 납골함을 찾아 명예선수 임명패를 전달했다. 그는 홍래를 위해 5월31일 경기를 꼭 이기겠다고 약속했고, 약속을 지켰다.
안산/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 그림 박재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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