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08.06 18:59 수정 : 2014.08.07 13:59

일러스트레이션 이민혜

[매거진 esc] 성석제의 사이(間) 이야기
인구 많고 관광객 북적이는 첨단의 도시 뉴욕에서는 왜 화장실을 찾기 힘든가

삼십여분을 돌아다녔더니
자연스럽게 신호가 왔다
하필 그곳은 뉴욕에서도
가장 복잡한 타임스스퀘어였다

미국 최대 도시 뉴욕의 인구는 2011년 기준으로 800만명이 훨씬 넘는데 이는 로스앤젤레스와 시카고를 합친 인구보다 많다. 맨해튼의 인구밀도는 1㎢에 2만5846명이다. 인구의 37.6%가 외국 태생이고 170여개의 언어가 쓰이고 있다. 내가 궁금한 것은 이런 도시에 왜 화장실이 그리 부족한가 하는 것이다.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나는 화장실을 유난히 자주 가는 편이다. 직장생활 초기에 회식을 하던 중에 타 부서의 어떤 상사가 웅장한 저음으로 “자네는 측간에 뭘 감춰두고 왔길래 그리도 자주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하는가” 하고 논평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대장부라면 어떤 자리에든 앉았다 하면 태산처럼 자리가 끝날 때까지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을 때이긴 했다.

1995년인가 뉴욕에 처음 갔을 때, 이민 생활 십년에 뉴요커가 된 후배로부터 “형, 뉴욕에는 화장실이 귀하니까 시내 다니실 때 화장실이 보이기만 하면 무조건 들어가세요” 하는 충고를 귓등으로 들었다가 곤란을 겪은 적이 몇 번 있었다. 뉴욕이나 파리, 런던처럼 오래된 도시는 헙수룩한 골목이나 어두컴컴한 구석이 많고 볼일을 볼 데가 많은 것 같은데 막상 결전을 치르려고 허리띠에 손을 대면 어디선가 사람이 불쑥 나타나서 자기는 딴 용건으로 온 체하면서 나를 감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쩌면 나와 같은 볼일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방광은 신장에서 보내는 오줌을 저장했다가 일정량이 되면 배출시키는 주머니 모양의 장기로 오줌 양의 증감에 따라 형상, 크기, 벽의 두께가 변하는데 용량은 성인 남성은 약 600㎖이고 여성은 남성의 6분의 5라고 한다. 오줌 양이 적거나 그 안이 비었을 때에는 납작한 구형으로 위쪽에 많은 주름이 생기고, 오줌이 가득 차면 점막이 늘어나서 매끄러운 계란형으로 변한다. 성인 남자는 최대 800㎖까지 오줌을 참을 수 있다. 오줌을 지나치게 자주 누거나 잘 참지 못하는 경우를 과민성 방광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내가 과민성 방광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주름이 좀 적을 뿐일 것이다.

2001년인가에 다시 뉴욕에 갔을 때 왜 유동인구가 많은 데 비해 화장실이 이렇게 적은가 물었더니 사람들이 많이 쓰는 화장실이 범죄의 현장으로 사용되거나 지극히 ‘사적 공간’인 화장실을 ‘지나치게 사적으로’ 이용을 하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쉽게 말해 화장실 주인들이 범죄나 성적 일탈, 마약 등으로 말썽의 소지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화장실에 자물쇠를 채우거나 없애버렸다는 것이었다. 물론 자기들 쓸 건 놔두고.

뉴욕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노숙자들이 개인 건물이나 가게에 딸린 화장실을 쓰면서 손님들의 항의를 받은 집주인이 노숙자를 아예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가설도 있다. 뉴욕의 건물주들이 노숙자가 자기네 건물의 화장실에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자 노숙자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변호사들이 소송을 제기했고 소송에 진 건물주들은 아예 화장실을 없애 버렸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 뉴욕에 간 게 2013년 가을이었다. 뉴욕의 화장실 사정은 해가 갈수록 더 악화되고 있는 것 같았다. 화장실 가는 게 무서워서 뉴욕 변두리에서 중심가인 맨해튼에 나가는 사람들은 아예 아침부터 물을 안 마신다고도 했다.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인데 설마 내가 갈 화장실 하나 없을까 싶어서 다른 도시에서처럼 가방에 물통을 집어넣고 맨해튼으로 진출했다.

뉴욕을 무대로 한 영화에 자주 나오는 커피전문점이 있어서 들어가 보니 웬만한 화장실 서너 개를 합쳐놓은 듯한 크기의 깨끗하고 잘생긴 화장실이 있었다. 그럼 그렇지, 물장사하는 곳에서 화장실이 없을 수 없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런데 화장실에 남녀 구분이 없고 칸막이 또한 하나뿐인 것에 대해서 뉴욕에 사는 동포가 설명해 주었다.

“남성에 비해 여성들이 평균적으로 화장실을 오래 쓰잖아요. 그런데도 웬만한 건물의 남녀 화장실 수는 같고 여성들이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게 불평등하다고 해서 여성을 대표하는 단체에서 건물주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대요. 당연히 이겼겠죠. 그러니까 건물주들이 남녀 화장실을 하나로 합쳐버렸다는 겁니다. 기다리려면 사이좋게 같이 줄 서서 기다려라, 이런 거죠.”

밀짚모자만한 잔으로 커피를 사서 반쯤 마시다 들고 나왔다. 밖에서 삼십여분을 돌아다녔더니 자연스럽게 신호가 왔다. 그제야 커피가 강력한 이뇨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인제공자인 커피전문점까지 가려니 꽤 멀게 느껴졌다. 가까이에 커피전문점은 아니고 케이크와 과일주스 등에 커피를 곁들여 파는 곳이 있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있는 종업원에게 먼저 커피를 주문하고 안에 들어가 앉아서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니 보란 듯이 “우리 가게에는 화장실이 없습니다. 딴 데 가서 알아보세요” 하는 문구가 벽에 붙어 있는 게 아닌가. 상황이 상황인지라 커피를 받아들자마자 급히 밖으로 나왔다. 커피를 들고 다니기 거추장스러워서 몇 모금 마시다 쓰레기통에 버렸다.

하필 그곳은 뉴욕에서도 가장 복잡하다는 타임스스퀘어였다. 길 건너편에 화장실이 있을 만한 곳이 두 군데 있었다. 햄버거와 음료를 파는 M, 도넛과 음료를 파는 D. 하지만 급한 사람은 나뿐만은 아니었다. 두 가게 다 화장실 앞에서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나는 바로 눈앞에 있는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양말을 하나 사주는 한이 있어도 화장실은 가야 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내 눈앞에 ‘맨즈’(Man’s)라는 글자와 아래층으로 향하는 화살표가 나타났다. 지하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그런데 지하층에 가서 아무리 후미진 곳을 찾아봐도 ‘맨즈 룸’(Man’s room)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지하층 남성의류 전용매장의 지배인처럼 보이는 흑인 남성을 붙들고 “남자 화장실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내 표정을 잠깐 보고는 내 얼굴색으로 상황을 파악했는지 백인 여종업원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이 손님, 화장실까지 모셔다 드리고 오세요.”

여종업원은 손에 들고 있던 상품을 판매대에 내려놓고 내게 따라오라고 하면서 앞장을 섰다. 엘리베이터가 아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꼭대기까지 무려 일곱층을 더 올라가자 구석에 ‘관계자 외 출입금지’ 표시가 달린 문이 있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무실 같은 공간이 나왔고 가장 안쪽에 화장실이 있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그녀는 가버렸다.

화장실 안에서 생각을 해봤다. 이렇게 큰 건물에 종업원은 얼마나 될 것인가. 일을 하다 말고 화장실에 한 번 가려면 꼭대기층까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와야 할 것이고 상사들이 줄줄이 버티고 있는 책상 앞을 지나야 할 것이고 남녀 공용 화장실 앞에서 초조하게 줄을 서서 기다렸다 사용해야 할 것이다. 이 사람들, 아침에 밥 먹고 나서 물이나 마음껏 마시고 나올 수 있을까.

“정말 고맙습니다.”

화장실에서 나와서 가장 직위가 높아 보이는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 힐러리 클린턴을 닮은 그 여성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뭘요. 또 만나요.”

성석제 소설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성석제의 사이(間) 이야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