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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9.17 23:05 수정 : 2014.09.18 16:59

일러스트레이션 이민혜

[매거진 esc] 성석제의 사이(間) 이야기
캐나다 토론토에서 본 NBA 농구 경기의 기억과 자본주의적 오락에 대한 단상

2007년 2월, 캐나다 토론토에 한 달쯤 머무르게 되었다. 토론토에는 5년 전에 이민을 간 동생 가족이 살고 있었다.

내가 캐나다에 머무는 동안 동생은 내게 그곳 아니면 맛보기 힘든 문화적 체험을 해보라고 권했다. 이를테면 캐나다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아이스하키 경기를 보거나 뮤지컬 공연을 관람하거나. 나는 북극에 가장 가까운 곳까지 가서 밤하늘의 별을 보거나 운이 좋다면 오로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직 겨울 추위가 기세를 떨치고 있었고 교통편 역시 불편했다.

일단 나는 그곳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것으로 토론토를 연고로 하는 프로농구팀의 경기를 관람하기로 결정했다. 동생이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주었고 나는 지하철을 타고 농구팀의 전용구장까지 갔다.

그동안 나는 프로농구팀의 경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농구 경기 자체를 본 게 대학 다닐 때, 그것도 신입생 때의 일이었고 그게 내가 그때까지 농구장에서 직접 본 유일한 농구 경기였다. 내가 입장권을 두 장 들고 같이 농구를 보기로 한 친구를 기다리고 있을 때 안면이 있는 라이벌 대학의 선배가 꿈에서나 본 듯한 어여쁜 여학생 두 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그는 나를 데리고 구석자리로 데려가 내 귀에다 침을 튀기기 시작했다.

“야, 내가 갑자기 ‘따블’을 뛰게 됐는데 말이다. 당연히 표가 한 장 모자라겠지. 얘들이 둘 다 농구를 미치도록 보고 싶다고 하니 난감하더구나. 너라면 누구를 버리고 누구를 따르겠니? 이럴 때 너를 만난 것은 하늘이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 그대로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노라.”

그는 일년 선배였다. 내가 재수를 했다면 같은 나이일 수도 있었다. 그는 언제나 여학생을 대동하고 나타났는데 하늘이 내린 그의 미학적 조건과 알맹이는 없이 장황하기만 한 언변을 생각한다면 불가사의한 일로 간주되고 있었다. 그런 그가 내 손에 들려 있던 입장권 한 장을 강탈해 갔던 것이고 나는 약속한 친구가 나타나기 전에 서둘러 입장해야 했다.

경기가 끝나자 목에서 쉰 소리가 났다
온몸이 안마라도 받은 듯 개운했다
5달러짜리 랩터스 티셔츠를 샀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사람들에게서
오락을 제공하고
돈을 울궈내는 방식이구나
싶으면서도 어쩐지 돈값 한다 싶었다

그러고 나서 입장권 부족과 무질서로 한 장에 몇백만원 한다는 체육관 유리문이 깨졌고 관중은 난입했고 경기는 졌다. 내가 일생 동안 농구 경기를 직접 관람하지 않게 된 이유를 그날의 그 경기가 충분히 제공했다. 어쨌든 나는 그날 27년 만에, 캐나다하고도 토론토의 프로농구팀인 토론토 랩터스 전용구장에, 농구 경기를 보러 갔다.

50달러쯤 되는 좌석표를 샀음에도 내 자리는 경기가 벌어지는 곳에서 가장 먼 곳이었다. 선수들이 개미만 하게 보여서 전광판으로 경기 돌아가는 것을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바에야 집에서 맥주나 마시며 편하게 앉아 보는 게 백번은 나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했다. 그 바람에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경기장 매점에서 파는 생맥주를 사러 가야 했는데 생맥주 사는 줄은 백미터 달리기를 해도 될 정도로 길었고 값은 또 예상의 두 배는 되게 비쌌다. 종이 잔이어서 시간이 경과하며 잔이 곧 물러터질 듯 물렁물렁해지는 바람에 맥주 맛이고 뭐고 느낄 겨를도 없이 바쁘게 삼켜야 했다. 어쨌든 귀를 찢을 듯 시끄러운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로 난생처음 듣는 이름의 선수들이 등장하고 나서 경기는 시작되었다.

엘에이(LA) 레이커스, 마이애미 히트, 뉴욕 닉스 등 미국 주요 도시의 강팀을 포함한 엔비에이(NBA)리그에 끼어 만년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토론토 랩터스의 상대는 당시 리그 2위를 달리고 있는 디트로이트 피스턴스였다. 랩터(맹금류)라는 어정쩡한 이름에 비해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의 ‘피스톤’은 이름부터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강인한 느낌을 줬다. 특히 피스턴스의 두 흑인 공격수는 자동차 공장의 로봇 같은 득점기계였다. 랩터스의 센터 겸 득점원은 리투아니아인지 크로아티아인지에서 온 용병이었고 키는 컸지만 느렸고 쉽게 지쳤으며 득점력이 부족했다.

그런데 피스턴스에서 몇 번의 공격 기회에 득점을 하지 못하고 덩치가 산만 한 랩터스 용병이 삼점 슛을 연속 성공시키면서 초반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이상하다는 건 평소의 랩터스답지 않게, 속어로 ‘개 발에 땀이 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5분쯤의 시간이 흘러갔을 때 스코어가 12 대 0이었다. 저러다가 디트로이트 피스턴스가 세계 최초로 농구 시합에서 영패를 당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디트로이트로 돌아갔을 때 성난 시민들이 몰려나와서 버스를 둘러싸고 팀을 해체하라고 요구하며 피스톤과 배터리 같은 자동차 부품을 집어던지는 광경이 떠올랐다.

‘아, 수리인지 말똥가리인지 황조롱이인지 솔개인지 매인지 모를 토론토의 새들아, 좀 살살 좀 하지 그러냐. 저 아이들이 힘들게 집에 도착했을 때 문을 안 열어줘서 얼어 죽지 않도록.’

나의 상상과는 상관없이 장내의 분위기는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 앞좌석에 앉은 사람이 일어서는 바람에 전광판을 보려면 나 또한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선수들이 득점을 하거나 묘기를 선보일 때 아나운서가 외쳐대는 대로 “랩터스!” 혹은 선수 이름을 따라 하면서 손을 쳐들거나 몸을 흔들어대는 바람에 경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 수 없었다. 거의 모든 관중이 마찬가지였다.

휴식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자리에 앉았다. 경기장에 응원단이 뛰어나왔고 음악과 춤으로 관중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생맥주 때문에 화장실에 갔다 와야 했고 오가면서 경기장에 바짝 붙은 특석을 볼 수 있었다. 일년 동안 지정석에서 보는 비싼 표를 구입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자리가 절반 넘게 비어 있었고 표정 또한 그리 흥분된 것 같지 않았다.

다시 시합이 재개되었다. 사람들의 광란과 고함으로 골이 들어간 것을 알았고 탄식으로 피스턴스가 고향에 돌아가 맞아 죽는 일을 간신히 모면하게 된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경기장과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 관중들의 응원은 더 거세지는 듯했다.

한 번도 앉지 못한 채 다시 휴식시간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어린이 관중이 나와서 깜찍한 춤을 추고 슛을 성공시키고 선물을 받아갔다. 관중에게 한시도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율동과 노래를 따라 하느라 온몸에서 땀이 났다.

마침내 경기가 끝났을 때 내 목에서는 쉰 소리가 났다. 온몸이 제대로 된 안마라도 받은 듯 개운했다. 5달러짜리 랩터스 티셔츠를 하나 샀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사람들에게서 오락을 제공하고 돈을 울궈내는 방식이구나 싶으면서도 어쩐지 돈값 한다 싶었다. 부족간의 전쟁을 연상시키고 삶에 보탬이 안 되는 소비를 부추기며 드라마를 주고 사람들의 의식을 마비시키는 역할을 한다 싶으면서도 재미있었다.

그 뒤로 어떤 나라에 갈 때마다 그 나라에서 가장 성행하는 프로 스포츠 시합을 눈여겨본다. 저녁마다 그날의 하이라이트 영상과 해설을 한 시간 이상씩 텔레비전으로 본다. 가령 미국의 미식축구, 영국의 크리켓과 럭비, 프랑스의 자전거 경기 같은 것들이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경기 규칙이나 선수에 대해서 거의 무지하다. 그래도 상관없다. 그냥 본다. 그게 뭔지 알 만하게 되었을 무렵, 여행은 끝이 난다. 그 또한 여행이다. 그렇게 사는 거도 있는 거다.

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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