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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0.29 20:24 수정 : 2014.10.30 10:12

[매거진 esc] 성석제의 사이(間) 이야기
고등학생 시절 문학소년 친구와 함께 갔던 강화도 가을 여행, 거기서 만나 지금까지 찾는 간판없는 국숫집

내 기준에 단골 음식점은 최소한 다섯 번 이상 반복해서 간 곳이다. ‘손님(소비자)은 왕이다’라는 값싼 자본주의식 구호는 단골 음식점한테는 통하지 않는다. 손님은 단골 음식점에 왕으로 군림하러 가는 게 아니고(무릎 꿇은 종업원에게 주문을 하는 건 더욱더, 절대 아니고) 자기 좋아서 자발적으로 가는 곳이다. 이미 알고 있는 단골 음식점의 맛, 그에 대한 기대는 어떤 화학조미료보다 뛰어난 천연의, 환상적인 조미료다.

내 단골집들을 떠올리다 보니 우연히도 국수를 파는 곳이 압도적으로 많다. 잔치국수, 냉면, 칼국수, 비빔국수, 막국수, 메밀국수, 밀면, 우동, 자장면 등등. 그래서 나를 알기 전에는 국수를 입에도 대지 않던 사람을 국수광으로 만들기까지 했다. 이유가 뭘까. 국숫집의 국수 맛은 세월이 지나도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첫맛이 잘 유지된다는 것이다. 국수류 음식은 변수가 많은 일반 한식에 비해 음식의 맛이 뇌에 전달되고 해석, 평가, 기억되는 방식이 간단하다. 또 재료인 밀과 양념의 기본인 간장 자체의 맛이 중독성이 있다. 국수는 술술 잘 넘어가서 아무리 유명한 집이라도 줄 서서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내게 가장 역사가 오래인 단골집 또한 국숫집(분식집)이지만 그곳은 없어지고 말았다. 기념 삼아 적어두자면, 그 식당의 이름은 ‘뚜리바분식’이고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이후 삼십대 중반까지 거주하던 서울 독산동의 골목 안에 있었다. 뚜리바분식의 ‘뚜리바’가 무슨 뜻일까. 근처의 구둣가게 이름은 ‘두발로’이고 술집은 ‘드숑’이어서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뚜리바가 프랑스어이며 천국을 의미한다는 ‘설’이 있는데 프랑스어로 천국은 ‘Paradis’이니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긴 십대부터의 단골집은 천국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내가 뚜리바분식에서 주로 먹은 음식은 당시만 해도 그리 보편적이라 할 수 없는 냉면, 그중에서도 비빔냉면이었다. 그 전까지는 딱 한 번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에 다니러 왔을 때 직장생활 하던 고모에게 냉면을 얻어먹은 적이 있었는데, 철삿줄 같은 면발과 어린이의 여린 상피세포를 할퀴어대는 매운맛에 질려서 ‘지옥의 음식’으로 분류해둔 바 있었다. 뚜리바분식의 냉면은 가게에서 파는 냉면에 무채와 고추장을 듬뿍 얹은 뒤에 참기름을 살짝 뿌리고 비벼 먹도록 한 것이었다. 비빔냉면에 육수를 주듯이 오뎅국물을 곁들여 주었다. 맛은 고추장 덕분에 꽤나 맵고 달고 짰다. 어쨌든 그 맛이 내게는 냉면의 첫맛으로 각인이 되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국수 삶을 때 나는
구수한 냄새가 느껴졌다
간판이 없었기 때문에
국숫집인지도 몰라볼 뻔했다

생애 두 번째 단골집은 고맙게도 아직 지상에 존재하고 있다. 1976년, 고등학교 1학년 되던 해 가을의 어느 일요일,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에 같은 반의 짝인 K로부터 강화도에 가자는 연락이 왔다. K는 수업시간에 책상 아래에 고은의 <이상 평전>을 펴놓고 읽던 조숙한 문학청년이었다(나는 반공을 표방한, 야하기로는 전례가 없던 만화나 역사소설을 표방한, 역시 야하기로는 쌍벽을 이루던 신문 연재소설을 읽었다). K가 왜 강화도에 가는지, 가야 하는지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일언반구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그가 말하는 대로 신촌에 있는 강화행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강화읍 시외버스정류장에 내렸을 때는 가을이고 가을비고 여행이고 간에 배가 무척이나 고팠다.

어릴 때부터 배가 고파본 적이 거의 없는 내게는 배고픔의 부작용이 한층 심각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었다. 배가 고프다 못해 눈이 뒤집힐 정도가 되면 음식 냄새에 극히 예민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닥치는 대로 먹을 것을 가진 존재를 공격하고 친구도 몰라보고 심지어 친구를 잡아먹기까지 한다고 한다. 그 친구가 평소에 고귀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던 문학청년이든 뭐든 간에. 천만다행스럽게도(나보다는 내 친구에게) 버스에서 내린 지 얼마 안 있어서 내 코에 국수 삶을 때 나는 구수한 냄새가 느껴졌다. 냄새는 버스정류장 바로 곁에 있는 국숫집에서 나고 있었다. 간판이 없었기에 냄새가 아니었으면 국숫집인지도 몰라볼 뻔했다.

그 국숫집의 메뉴는 단 두 가지였다. 비빔국수와 물국수(잔치국수, 소면이라고도 한다). 그 전까지는 비빔국수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지만 뚜리바분식의 비빔냉면에 대한 기억 때문에 망설임 없이 비빔국수를 선택했다. 비빔국수는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금방 탁자 위에 놓였다. 맛을 음미할 겨를도 없이 허겁지겁 비빔국수를 먹고 나서 빈 그릇을 바라보니 또 한 그릇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허기가 사라지자 염치가 살아나서 한때 음식거리로 보였던 친구를 향해 한 그릇 더 먹자는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말없이 계단을 걸어 올라와서 국사책에 나오는 전등사로 가는 버스를 탔다.

전등사를 구경하고 나서는 역시 국사책에 나오는 초지진까지 말없이 삼 킬로미터가량을 걸어서 갔다. 짙푸르고 높은 하늘, 야무진 손으로 삶고 두들겨 빤 빨래처럼 하얀 구름 아래 코스모스가 피어 하늘거렸고 나무는 단풍으로 붉었으며 벼가 익은 황금빛 들판에는 억새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 길은 한국에서 태어난 게 행운이라는 느낌을 줄 정도로 황홀했다.

초지진에서 버스를 타고 말없이 돌아와 우리는 다시 그 국숫집으로 갔다. 이번에는 천천히 음미하며 국수를 먹을 수 있었다. 스테인리스 그릇에 적당한 양의 소면이 담기고 거기에 씹힐 때 질감이 많이 느껴지고 맛이 강한 김치를 잘게 썰어 넣고 김가루가 많이 들어간다는 점이 남달랐다. 육수를 곁들여 주었는데 미리 후추가 뿌려져 있었다. 육수에는 강화도에서만 나는 순무가 들어가 특유의 맛을 낸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설탕이 있었다. 설탕은 국수 고명 위에도 뿌려져 있었고 설탕 통이 탁자에 놓여 있어서 취향에 맞춰서 더 넣어 먹을 수 있도록 했다. 그 설탕은 밀가루로 만든 국수가 가진 쓴맛을 완화시키기도 했지만 친구를 말없이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허기진 청소년의 뇌에 에너지를 빠르게 공급해 제정신을 차리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날 이후 해마다 가을이면 친구들과 신촌에 가서 강화도행 시외버스를 탔고 내리자마자 국숫집으로 직행, 비빔국수를 한 그릇 먹었으며 전등사에 갔고 초지진까지 걸었다. 초지진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행 버스가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와 비빔국수 곱빼기를 먹었다. 어느 때부터는 차를 운전해 가고 두어 번은 자전거를 타고 가기도 했다. 혼자 간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 강화도를 찾아간 횟수는 백 번쯤 될까. 어떻든 갈 때마다 대부분은 비빔국수를 먹었다.

오늘 혼자만 말없이 비빔국수를 먹으러 와서 보니 70대의 여자 손님들이 들어와서 국수를 주문해서 먹고 있다. 나중에 온 50대 남자들이 그 손님들의 국수 값까지 계산을 해준다. 식당 안에서 가장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여자 손님이 단풍 보러 설악산 공룡능선에 다녀왔다고 이야기한다.

“아이구, 나이 팔십 다 되야 공룡능선까지 갔다 왔시꺄? 할머이 대단하셨시다.”

동네 주민들이 단골인 식당을 단골집으로 삼으면 천국에 가서도 후회하지 않으리.

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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